[동아광장/송인호]미래는 말이 아닌 예산으로 열어야 한다

  • 동아일보

‘AI 시대 첫 예산안’인데 AI 투자는 1.4%뿐
‘민생-사회연대 경제’ 예산, AI 예산 2.6배
예산은 국가 미래 설계할 강력한 정책 도구
‘AI 3대 강국’ 목표는 선언으로 오지 않는다

송인호 객원논설위원·KDI 경제교육·정보센터 소장
송인호 객원논설위원·KDI 경제교육·정보센터 소장
국회가 심사에 돌입한 이재명 정부의 첫 예산안은 728조 원 규모다. 역대 최대다. 정부는 이를 “인공지능(AI) 시대를 여는 첫 예산안”이라고 명명했다. 그러나 재정의 배분을 들여다보면 제목과 내용이 따로 노는 구조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AI 3대 강국’ 도약이란 간판을 내세웠지만 AI 관련 예산은 전체 예산의 1.4% 수준인 10조1000억 원에 그친다. 기술 패권 경쟁이 국가의 생존까지 좌우하는 시대에 미래 산업의 심장부에 투입된 예산이 이 정도라면 과연 정부가 말하는 ‘AI 시대 개막’이 실제 목표인지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반대로 그 비중으로 눈길을 끄는 것은 선심성 지출로 평가되는 사업들이다. 지역화폐 등 ‘민생·사회연대 경제’ 항목에는 26조 원,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 사업 등 ‘지방 거점 성장’ 예산에는 29조 원이 배정됐다. 이는 각각 AI 예산의 2.6배, 2.9배에 달한다.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명목을 내세웠지만 예산이 미래보다 현재의 정치적 수요에 지나치게 쏠린 모습이다.

거시경제학에서는 재정이 지향해야 할 방향성으로 두 기준을 제시한다. 첫째, 성장잠재력을 높이는가. 둘째,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해치지 않는가. 이 두 기준을 동시에 만족할 때 정책 효과는 크게 나타난다. 그러나 현재 예산안은 이 두 기준에서 얼마나 자유로울까.

우선 성장잠재력 측면을 보자. 세계 각국은 지금 미래 기술을 잡기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다. 미국은 ‘반도체법(CHIPS and Science Act)’ 등으로 반도체와 AI에 국가적 투자를 쏟아붓고 있고, 중국은 국가 전략 차원에서 AI 인력·데이터·산업 생태계를 통째로 키우고 있다. 유럽연합(EU)도 AI 규범과 기술 체계를 서둘러 정비하며 뒤처지지 않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이 경쟁의 한복판에서 미 주요 대학들은 이미 ‘AI 전쟁’에 들어갔다. 매사추세츠공대(MIT)는 가장 앞선 사례다. MIT는 2018년 10월, 무려 10억 달러(약 1조4000억 원) 규모의 AI·컴퓨팅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일반 연구 과제가 아니라 대학의 구조를 새로 짜는 수준의 개편이었다. 모든 학과에 AI·데이터 교육을 의무화했고, 공학뿐 아니라 인문·사회학부에도 AI 윤리·정책·사회적 영향 연구를 깊게 연결했다. MIT는 “AI는 특정 공대만의 기술이 아니라 대학 전체를 지탱하는 기반 인프라”라고 예산으로 선언한 것이다.

반면 한국의 현실은 솔직히 아쉽다. 예산이 지나치게 잘게 나뉘어 연구자 한 명에게도 1년 동안 안정적으로 연구할 예산을 배정하는 일이 쉽지 않다. 세계 최고 대학 한 곳이 ‘1조4000억 원대 투자’를 집행하는 동안, 우리는 ‘조금씩 나눠 주기’ 방식에 머무르는 셈이다. MIT의 메시지는 단순하다. 미래는 말로 여는 것이 아니라 예산으로 여는 것이다.

둘째, 재정의 지속 가능성 문제도 심각하다. 9월 기준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이미 100조 원을 넘어섰고, 국가채무는 1259조 원에 달했다. 내년 국채 이자만 35조 원 안팎으로 추산되는데, 이는 AI 예산의 세 배가 넘는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미래 세대의 부담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다.

물론 복지나 지역 사업이 중요하다. 지역 격차 완화, 취약계층 지원, 농촌 공동체 회복 등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문제는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재정은 ‘선택과 집중’이라는 원리가 지배한다. 예산은 국가의 미래를 설계하는 가장 강력한 정책 도구가 돼야 한다. 그 도구가 단기 선심성 지출에 쏠린다면 구조적 문제는 해결되지 못하고, 기회비용만 커진다.

AI 시대는 선언으로 오지 않는다. 인재·연구·데이터 및 컴퓨팅 인프라, 산업 생태계를 하나로 묶는 총체적 전략이 있어야 하고, 예산은 그 전략의 실행력을 결정짓는다. ‘AI 시대의 첫 예산안’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면 그에 걸맞은 구조적 투자가 뒤따라야 한다. 적은 미래 투자와 나눠 먹기식 연구 투자 지출과 같은 관성을 더 이상 지속해서는 안 된다. 과거 경기의 불씨를 살린다는 명분으로 확정적 재정정책을 편 것도 사실이지만, 이제는 ‘확장’이 아니라 ‘정상화’가 필요한 시점임을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지적했다. 그 시작은 지방교육재정교부금에서 내국세 수입에 연동한 현행 제도를 학령인구에 맞춰 조정하고, 기초연금을 취약 노령층 중심으로 집중하는 일일 것이다. 지금처럼 매년 적자 폭이 누적되면, 향후 경기침체기에 사용할 정책 여력이 줄어들게 마련이다.

재정은 최후의 안전판이어야 한다. 그 안전판이 상시로 사용된다면, 어느 순간 정책 여력의 힘은 약화하고 만다. 재정의 정상화는 정책의 질을 높이는 선택이며 미래 세대의 기회를 지켜줄 보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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