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드라마와 K팝의 ‘쌍끌이’ 인기가 계속되고 있다. 올 들어서도 드라마 ‘오징어게임’ 시즌2는 90여 개국에서 1위에 오르며 흥행을 이어갔다. 블랙핑크 로제의 솔로곡 ‘아파트’도 미국 빌보드 차트 최상위에 이름을 올리며 세계를 강타했다. 오징어게임 시즌1이 세계적인 열풍을 불러일으킨 게 3년 반 전이었다. 당시에도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영국 밴드 콜드플레이와 함께 부른 ‘마이 유니버스(My Universe)’가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인 ‘핫 100’ 1위에 이름을 올렸다. 이쯤 되면 K콘텐츠는 일시적 유행을 넘어섰다고 볼 수 있다.
콘텐츠의 힘은 한국 산업 구조와 ‘나라 장부’까지 바꾼다. 지난해 멀티미디어 제작 서비스 수지(수출―수입)는 4억9000만 달러(약 7200억 원) 흑자였다. 한국 제작사가 해외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 드라마를 제작해 납품하고 받은 돈이 흑자에 기여했다. 한국 가수가 해외에서 콘서트를 열어 벌어들인 돈이 잡히는 공연 및 전시 관련 서비스 수지도 3억 달러 넘게 흑자를 냈다. 불과 2019년까지만 해도 이 서비스 수지는 만성 적자였다.
K콘텐츠가 약진하고 있지만 그걸로는 부족하다. 전체 지식서비스 무역 수지는 여전히 적자다. 특허나 상표권 사용료, 법률·인수합병(M&A) 자문료 등까지 포함되는 지식서비스 무역 수지는 지난해 72억6000만 달러 적자를 냈다. 통계를 확인할 수 있는 2010년 이후 단 한 번도 흑자를 본 적이 없다. 지식재산권 사용료와 전문·사업서비스로 해외에 지출하는 돈이 워낙 많다 보니 적자를 벗어나기 어렵다.
제조업에 편중된 한국 산업 구조를 바꾸려면 서비스 산업을 키우고 서비스 수출도 늘려야 한다. 한국의 서비스 산업 경쟁력이 싱가포르, 태국보다 낮다는 건 약 30년 전 한국은행 보고서에도 등장한다. 하지만 한국의 서비스업 비중은 20년 넘게 60% 수준에 그치고 있다. 영국과 일본, 독일 등 주요국은 이미 2000년대 초반에 70%에 육박하거나 넘었다.
서비스 산업 선진화를 더는 미루기 어렵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교역에서 서비스 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게 늘었다. 한은은 지난달 내놓은 보고서에서 “통상 환경의 불확실성 증대, 중국의 경쟁력 향상 등의 영향으로 당분간 상품 수출은 크게 증가하지 못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서비스 수출 확대가 필수적인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2일(현지 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요 교역국을 대상으로 상호 관세 부과에 나선다. 미국은 지난해 한국과의 상품 교역에서 세계에서 8번째로 많은 적자를 봤다. 그러나 상품이 아닌 지식서비스 분야에선 오히려 한국이 지난해 56억1000만 달러 적자였다.
미국의 상품 관세 장벽은 갈수록 더 높아질 것이다. 관세로 상품 교역의 흑자 축소가 불가피하다면 서비스 산업의 대미(對美) 적자는 줄여 나가야 균형이 맞는다. 정부와 국회는 트럼프발(發) 관세 폭탄을 걱정만 할 게 아니라 할 수 있는 일부터 찾아서 해야 한다. 지난해 10월 또 발의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14년째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오징어게임과 BTS의 개인기로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정부와 정치권이 깨달을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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