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조권형]대선주자 수혈하다 또 참사… 당내 주자 안 키운 당 업보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5월 15일 23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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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권형 정치부 기자
조권형 정치부 기자
“우리가 무슨 플랫폼 정당이냐.”

지난달 초 국민의힘에서 한덕수 전 국무총리 추대론이 불거지자 한 당 관계자는 이같이 말했다. 그는 “한 전 총리에게 정당인으로서 정체성이나 동지 의식이 있느냐”며 “당이 법조인, 관료 등을 데려와 뒷바라지만 하려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전 총리 추대론의 결말은 알다시피 상상 초월의 대참사였다. 이 참사는 정치 참여 9일 만에 거대 보수 정당의 후보를 넘본 한 전 총리가 자초한 면이 크다. 2일 출마를 선언한 한 전 총리는 후보 등록일(11일) 이전까지 단일화가 끝나지 않으면 후보 등록을 하지 않겠다는 배수진을 쳤다. 사실상 시한부 무소속 후보였던 것.

이는 앞서 “후보 등록일 이전에 단일화를 완료하겠다”고 공언했던 김문수 후보가 말을 뒤집는 빌미가 됐다. 김 후보는 “당원도 아니고 (후보) 등록도 안 하겠다는 분이 ‘당신이 단일화 약속했는데 안 하느냐’고 요구하는 건 전 세계 역사상 처음”이라며 버텼다.

한 전 총리도 문제지만 또다시 당 외부 대선 주자를 수혈하려 한 국민의힘의 습성이 더 문제다. 국민의힘은 지난 대선 당시 검찰에서 뛰쳐나온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영입한 뒤 전폭적으로 밀어 대선 후보로 만들었다. 본선에서 윤 전 대통령의 자질론, 무속 논란 등이 불거지며 부실 검증이 문제가 되었지만 대안이 없었던 국민의힘으로선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윤 전 대통령의 정치 경험 부족은 독단과 불통의 태도로 이어졌다. 윤 전 대통령이 기성 정치인과 국회를 무시하는 언행을 하는 데 대해 사석에서 분노를 토로한 국회의원이 한둘이 아니었다. 하지만 당도 당에 대해 부채 의식이 없는 윤 전 대통령을 통제하지 못했다. 역시 정치 경험이 없는 한동훈 당시 법무부 장관을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세워 윤 전 대통령과의 소통을 시도했다. 그러나 이는 당정 갈등으로 이어졌고 결국 비상계엄 사태까지 벌어졌다.

그럼에도 국민의힘은 또다시 외부 주자에게 운명을 걸었다. 일단 이겨놓고 보자는 심리였다. 한 전 총리를 두고 “정치 경험은 없지만 행정 경험이 50년이라 검사 출신과는 다르다”는 옹색한 논리가 나왔다. “밖에서 용병을 불러다 대통령을 시켰다가 이 꼴이 났는데 또다시 용병을 불러오는 게 맞느냐”는 비판에는 눈감았다.

이처럼 외부 인사를 대선 후보로 옹립하려는 시도는 당내 주자가 말라죽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당에 수십 년 헌신해 온 정치인을 무시하는 행태로 비쳐 대통령을 꿈꾸는 정치인에게 회의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대선 경선 주자로 뛰었던 5선 나경원 의원이 “우리 당은 늘 ‘기승전 용병’”이라고 한탄하고, 소장파인 초선 김재섭 의원이 “대통령 후보를 만들 수 없는 정당이냐”고 자조하는 게 현실이다.

국민의힘은 당내 주자를 키우는 데 사활을 걸어야 한다. 말잔치만 무성했던 청년 정치인 육성을 시작해야 하고, 더불어민주당에 비해 부실한 의원 평가 제도도 정비해야 한다. 또 자당 정부에서는 의원들을 내각에 많이 보내 행정 경험과 전문성을 쌓게 해야 한다. 당에서 검증 못 한 외부 주자를 대통령으로 만든 귀결이 비상계엄이라는 점을 책임과 반성, 자강의 출발점으로 삼았으면 한다.

#국민의힘#한덕수#대선 후보#정치 경험#외부 인사#당내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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