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은 검찰총장이던 2019년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검찰의 중립성과 독립성이 어느 정부에서 그나마 보장됐느냐”고 이철희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묻자 이명박 정부를 지목한 것이다. 실제 검찰은 2008년 공천 대가로 돈을 받은 혐의로 김윤옥 여사의 사촌 언니를, 2010년 알선수재 혐의로 이 전 대통령의 측근인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을 각각 구속했다. 이명박 정부 초기 검찰이 ‘쿨’하게 처리했다는 사건들이다.
2010년 민간인 불법 사찰 사건이 불거졌다. 이 전 대통령을 희화한 동영상을 블로그에 올렸다는 이유로 국무총리실의 공무원 감찰 부서인 공직윤리지원관실이 김종익 씨를 사찰하고 해임되도록 압력을 가했다는 의혹이었다. 김 씨는 공무원이 아니었기 때문에 의혹이 사실이라면 정권을 뒤흔들 불법 행위였다.
뉴욕타임스는 훗날 이 사건을 워터게이트 사건과 비교했다. ‘왕차관’으로 불린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2차관과 이영호 전 대통령고용노사비서관 등 이른바 ‘영포라인’의 비선이 가동된 초대형 게이트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검찰은 이 사건에선 쿨하지 않았다. 윗선은 규명하지 않은 채 꼬리만 잘라냈고, 2012년 3월 내부 폭로가 나온 뒤에야 다시 수사에 나서 민간기업 불법 사찰 혐의까지 밝혀낸 뒤 박 전 차관 등을 재판에 넘겼다. 이 전 대통령의 형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이 저축은행 비리로 구속된 것도 정권 말기인 2012년 7월이었다.
박근혜 정부 때도 검찰은 쿨하지 않았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때부터 최순실 일가 문제가 거론됐고, 국가정보원이 최순실 문제를 다룬 첩보 문건을 만들 정도로 국정농단 의혹은 정권 초부터 위험 수위에 다다랐다. 2014년 ‘정윤회 문건’ 유출 사건, ‘청와대 문고리 3인방’ 의혹 등이 전주곡으로 나왔음에도 수사에 적극적이지 않던 검찰은 2016년 10월 최순실의 태블릿PC가 공개된 후에야 대대적인 수사에 들어갔다. 문재인 정부 초기 때도 검찰은 적폐 청산에만 앞장서며 탈원전 등 정권을 겨냥한 수사엔 미온적이었다.
지난달 검찰은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연루 의혹에 대한 재수사에 착수했다. 지난해 7월 검사들이 대통령경호처 부속청사로 가 휴대전화도 반납한 채 김 여사를 조사하고 무혐의 처분하더니 지금은 다시 수사할 필요성이 생겼다는 게 검찰의 논리다. 공교롭게도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되자 입장이 바뀐 것이다. 김 여사 계좌가 주가 조작에 사용된 것은 2010년, 김 여사에 대한 고발장이 접수된 것은 2020년이었다. 검찰이 처음부터 제대로 수사했다면 김 여사 문제가 이렇게까지 커지고 윤석열 정권에 부담이 되진 않았을 것이다.
기소권을 가진 검찰의 수사는 늘 정확하고 공정해야 한다. 그러나 정권마다 반복되는 부실 수사를 지켜보는 국민들은 물을 수밖에 없다. 검찰의 수사는 왜 지금은 항상 맞고, 그때는 늘 틀렸다는 것인지. 검찰이 신뢰를 회복하려면 이 질문부터 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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