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황형준]대선 때면 등장하는 ‘광팔이’… 언제까지 반복돼야 하나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5월 29일 23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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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형준 정치부 차장
황형준 정치부 차장
2014년 7월 23일 서울 동작구의 한 커피숍 앞. 재래시장 골목 인근에 있던 커피숍 앞에 취재진이 진을 치고 있자 영문을 모르던 한 주민이 기자에게 “무슨 일입니까”라고 물었다. 7·30 재보궐 선거에서 서울 동작을 지역구에 출마한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후보와 정의당 고 노회찬 후보가 단일화 협상을 벌이고 있다고 설명하자 이를 들은 한 60대 남성이 옆에 있던 다른 주민에게 “화투를 치고 있는데, 광 팔 사람 정하는 중이래”라고 말했다.

혜안이 담긴 비유여서 생생하게 기억에 남았다. 통상 3명이 치는 ‘고스톱’에서 4, 5명이 참여한다면 1, 2명은 패를 본 뒤 죽을지 선택하며 패에 광(光)이 있으면 이를 판다. 그 대신 게임에 참여한 사람은 광을 판 사람에게 ‘광값’을 내야 한다. 대선 단일화에서 광값은 지지를 표명하는 대신 공동정부 수립이나 공직 배분 등 지분을 얻는 것과 유사하다. 승리 가능성이 높지 않을 때 출마를 포기해 얻는 대가가 만족할 만하면 단일화하는 게 남는 장사인 것이다.

다음 날 지지율이 상대적으로 낮았던 기 후보가 결국 자진 사퇴하면서 노 후보로 단일화했지만 선거 결과는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나경원 후보의 승리였다. 단일화가 늦어지면서 효과가 반감된 탓도 있었다. 당시 7월 21일부터 투표용지가 인쇄됐는데 단일화는 24일에야 이뤄진 것.

6·3 대선에서 마지막 변수로 꼽혔던 단일화 문제는 결국 ‘광팔이’를 정하지 못하고 마무리되는 분위기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와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단일화는 당원들이 판을 엎으면서 한 전 총리의 ‘구일몽’으로 허무하게 끝났다. 김 후보와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단일화는 지지율이 높은 김 후보 측에선 이 후보의 사퇴를 촉구하고, 이 후보는 “비상계엄 세력과의 후보 단일화는 이번 선거에 없다”며 배수진을 치면서 사실상 무산됐다.

김 후보와 이 후보 간 보수 진영 단일화 논의가 무위로 돌아간 것은 단일화하더라도 대가가 분명치 않아서일 것이다. 사퇴한 후보의 지지층 일부가 상대 후보로 흡수되지 않고 민주당 이재명 후보나 부동층으로 돌아설 것이라는 여론조사 결과가 잇따르면서 단일화가 되더라도 승산이 높지 않다는 현실적인 측면이 크다. 또 김 후보와 비상계엄과 탄핵 등에 대한 입장이 다른 이 후보로선 차라리 단일화에 선을 긋고 10%대 지지율 확보로 명실상부한 대선 주자 지위를 얻는 게 낫다고 전략적으로 선택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설사 단일화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시킬 만한 감동적인 스토리를 만들어내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평가다.

대선 때마다 반복되는 단일화 논의는 마치 흘러간 레코드판을 트는 것같이 진부하다. 야합이라거나 정치공학적이라는 비판에도 오로지 승리를 위해 정체성이 다른 세력과 손을 잡는 단일화가 낳은 폐해도 적지 않다. 모든 이슈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단일화는 국정 비전이나 정책 공약 등에 대한 무관심과 정치에 대한 실망을 키우는 부작용을 낳았다.

과반을 얻지 못한 후보가 없을 시 1, 2위 후보끼리 결선을 치르면 후보 단일화 논의는 불필요해진다. 개헌을 통한 대선 결선투표제 도입이 필요한 이유다. 국민들도 대선 때마다 되풀이되는 광팔이의 등장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을 것이다.

#대선#광팔이#광값#고스톱#단일화 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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