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준일]반이재명만 외친 국민의힘의 성적표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6월 26일 23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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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일 정치부 기자
김준일 정치부 기자
국민의힘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은 22일 이재명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 오찬에서 “만약 사법부가 재판을 연기한다면 임기가 끝나고 재판을 받겠다는 것을 약속해달라”고 요구했다. 이를 두고 ‘반(反)이재명’ 정서가 매우 강한 국민의힘에서도 적지 않은 의원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모처럼 국민들의 이목이 집중된 정치 이벤트에서 이미 실패한 대선 캠페인인 이 대통령 사법리스크 공격을 들고나오는 게 도움이 되느냐는 것이다.

그렇다고 김 위원장을 힐난할 문제는 아니다. 그동안의 국민의힘 관성을 보여주는 단면이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대선 패배 직후 지도부가 와해됐다. 비대위원장은 자리를 유지하고 있지만 비대위원과 주요 당직자들의 총사퇴로 지도부 기능은 상실했다. 국민에게 목소리를 낼 당 지도부 역할은 사실상 송언석 신임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한 원내지도부가 대신하고 있다. 그런데 대선이 끝난 지 3주가 지났지만 원내대책회의를 보면 ‘이재명’ 얘기만 한다.

새 원내지도부는 17일 첫 원내대책회의에서 이 대통령을 20번 언급했다. “‘이화영 조국 사면론’은 이 대통령 당선 밀실야합 채권을 청구하는 것”, “이재명식 경제학으로 현금 살포하면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전철” 등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식이다. 비판과 견제는 야당의 본령이라는 점에서 크게 틀린 메시지는 아닐 수 있다.

문제는 메시지 대부분에 이 대통령만 있고 국민의힘은 없다는 점이다. 대선 패배 이후 국민의힘이 어떤 쇄신을 하겠다는 건지, 어떤 정책으로 국민에게 다가가겠다는 건지에 대한 메시지 없이 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만 이어가고 있다는 얘기다. 20일 두 번째 회의, 24일 세 번째 회의도 마찬가지였다. 세 번의 원내대책회의에서 나온 이 대통령 이름은 59번에 이른다. 더불어민주당이 국민의힘을 향해 “‘기승전이재명’밖에 할 줄 아는 게 없느냐”고 비아냥대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다.

민주당은 행정권력과 입법부 과반을 차지하고, 보수정당은 100석 남짓 소수 야당이 된 건 5년 전 이맘때와 꼭 같다. 하지만 당시 총선 패배 뒤 새로 들어선 지도부는 메시지의 주어를 ‘문재인’으로만 두지 않았다. 2020년 6월 ‘김종인 비대위’ 첫 회의에선 ‘문재인’이란 단어는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그 대신 “데이터청 설립” “플랫폼 노동자의 4대 보험 문제 의제화” 등 정책 제시에 집중했다. 두 번째, 세 번째 회의도 마찬가지였다. 저출생 해결을 얘기했고, 총선 패배 반성문을 썼고, 혁신을 약속했다. 당시 주호영 원내지도부 회의도 비슷했다.

그때도 당내에선 소수 야당이 강력한 대여(對與) 투쟁 대신 실현할 수단도 없는 정책 얘기만 하고, 자아비판만 하는 게 맞느냐는 불만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꾸준히 보수정당의 정책을 강조하고, 혁신을 얘기하자 민심이 반응했다. 이듬해 국민의힘의 재보궐선거 승리와 2022년 대선 승리는 스스로 거듭나려는 이 같은 노력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대선에 지고도 3주 내내 당 쇄신 대신 이 대통령만 얘기하던 국민의힘은 26일 전국지표조사(NBS)에서 지지율 20%라는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이쯤 되면 이번 대선에서 진 게 이 대통령을 더 열심히 때리지 못해서가 아니라는 걸 느낄 때도 되지 않았나.

#김용태#이재명#국민의힘#비대위원장#대선 패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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