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준일]준비 안 된 장관 후보자… 정책 역량 못 따진 국회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7월 21일 23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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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일 정치부 기자
김준일 정치부 기자
“꼭 윤진숙 전 해양수산부 장관 청문회를 보는 것 같네요.”

이진숙 전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의 16일 국회 인사청문회를 지켜보던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 전 후보자가 정책 질의에서 “모르겠다”고 답하는 모습이 2013년 박근혜 정부 당시 ‘수첩인사’ 논란의 한복판에 있던 윤 전 장관의 청문회와 겹쳐 보였다는 것이다. 윤 전 장관은 청문회에서 수산업·어업 관련 질의 상당 부분에서 웃으며 “잘 모르겠다”고 말해 빈축을 샀고, 취임 10개월 만에 경질됐다.

지난주 내내 이어진 이재명 정부 장관 후보자들의 인사청문회는 ‘보좌진 갑질’ ‘농지법 위반’ ‘논문 표절’ 등 숱한 의혹과 논란 속에서 도덕성 검증에 초점이 맞춰졌다. 이 때문에 일부 장관 후보자들의 정책 전문성 문제는 주목을 덜 받은 측면이 있다.

이재명 대통령의 이 전 후보자 지명 철회에는 도덕성 논란뿐 아니라 전문성 문제도 주요 배경이 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전 후보자는 청문회에서 초·중·고 법정 수업일수(190일)를 묻는 질문에 “정확히 모르겠다”고 했다. 유보통합(유치원과 어린이집 통합) 진행 상황을 묻자 “단일화는 일단 됐다”에서 “단일화 시도는 됐다” “유보통합 기본개념은 나왔다”로 답이 계속 바뀌었다. ‘유보통합을 어디에서 주관하는지 아느냐’는 질문에는 “교육청에서 하고 있다” “그러니깐 지자체에서 하고 있던…” “교육부가 하지만 실행기관은 교육청”이라며 오락가락했다.

결국 이 전 후보자는 낙마했지만 ‘운이 없었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주목을 덜 받았던 다른 청문회장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있었지만 대통령실은 나머지 후보자들에 대해선 임명 방침을 밝혔으니 말이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정년으로 퇴직하는 근로자의 비율을 묻는 질문에 “정확한 수치는 모른다”고 했다. ‘임금체계 개편 없이 정년을 늘리는 데 성공한 나라가 있느냐’는 물음엔 “거기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고 했고, ‘그럼 관련 정부 연구 결과는 하나라도 있느냐’는 질문에도 “잘 알지 못한다”고 했다. 정년 연장은 고용부 핵심 화두다.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 후보자는 ‘정부조직법에 기재된 보훈부 장관의 업무는 무엇이냐’는 질문에 입을 떼지 못했다. 보훈부 슬로건에 대해서도 “파악 못 하고 있다”고 했다. 보훈대상자가 몇 명이냐는 질문에는 자료를 들춰본 끝에 대답했다. 본인의 보훈 전문성에 대해선 “지역에서 만난 택시기사분이 독립유공자 유족인 경우가 있었다”는 발언을 내놨다.

다른 후보자들의 인사청문회에서도 “모른다”는 대답은 차고 넘쳤다. 장관 후보자들이 보인 실망스러운 모습이지만 마냥 후보자들만 지적하기엔 뒷맛이 개운치 않다. 야당 의원들 역시 답변의 모순과 허점을 공략하는 후속 질문은 하지 못했고, 밀도가 낮은 나열식 질문으로 일관했다. 일부 의원들은 정책질의라면서 슬며시 지역 민원을 들이밀기도 했다.

국회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행정부 견제고, 인사청문회는 이를 위한 강력한 수단이다. 준비가 덜 된 장관 후보자가 가장 큰 문제지만, 제대로 준비하지 않은 의원들도 비판을 피하기 어렵단 얘기다. 서로가 허술했던 일주일간의 ‘무늬만 청문회’의 결과는 국민들이 떠안게 됐다.

#인사청문회#장관 후보자#도덕성 논란#정책 전문성#대통령 지명 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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