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대로 신드롬인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만들어낸 저력에 대해 넷플릭스 관계자들이 보는 시각은 좀 달랐다. 보통 콘텐츠의 힘이나 K팝의 위력 등을 꼽는데, 그에 못지않게 전 세계 어느 나라의 어떤 언어로 시청해도 더빙과 번역이 완벽하게 이뤄진 콘텐츠였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넷플릭스에는 ‘랭귀지 매니저’라는 직책이 따로 있는데, 한 편의 콘텐츠를 190여 개국에 동시 공개했을 때 그 나라 특유의 역사, 문화를 반영한 어휘가 이질감 없이 미묘한 뉘앙스까지 살린 채 반영될 수 있도록 철저한 프로세스를 거친다. 또한 특정 어휘가 어떻게 번역돼야 하는지 가이드 라인을 제시하고 감수를 마치는 모든 과정이 제작 프로세스에 포함된다.
“기러기 토마토 우영우” 같은 말장난이 많았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나 한국 전통놀이가 다양하게 등장했던 ‘오징어 게임’ 같은 한국 콘텐츠들이 세계에서 이질감 없이 받아들여지고 인기를 끈 이유 역시 체계적으로 진행되는 철저한 번역 및 더빙 덕분이라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었다. 서로 다른 문화와 언어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번역해 전달하느냐는 동일한 콘텐츠라도 질적으로 다른 파급력을 갖게 한다. 만약 그게 문학이라면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최근 한국문학번역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이곳의 번역출판 지원을 받은 문학도서의 해외 판매량이 약 120만 부로 전년 판매 수치(약 52만 부)의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번역도서 출간 종수와 판매량이 모두 큰 폭으로 상승했다. 도서당 평균 판매량은 1271부로 사상 최고치였다. 1만 부 넘게 팔린 책도 24종에 달했다. 정보라의 ‘저주토끼’, 박상영의 ‘대도시의 사랑법’,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 등이 3년 연속 해외에서 4000부 이상 판매된 스테디셀러에 이름을 올렸다.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과 K컬처의 선전에 힘입어 한국문학에 대한 관심이 이처럼 높아진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다. 이런 기세를 이어가려면 번역가 양성과 지원에 좀 더 체계적인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는 2016년 부커상(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했던 한강의 ‘채식주의자’처럼 주로 영미권에서 주목받은 작가들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고, 이후 다른 언어로 번역본이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오징어 게임’ ‘케데몬’ 등의 흥행에서 보듯 한국문학의 세계화 보폭을 넓히기 위해서는 다양한 언어권에서 그 나라의 역사, 문화적 맥락을 감안한 섬세한 번역이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튀르키예에서 출간된 황보름의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는 지난해 8만 부 이상, 이영도의 판타지 소설 ‘눈물을 마시는 새’는 독일에서 2만 부 이상 팔렸다. 한국에는 아직 ‘그곳의 언어’로 번역되지 못했을 뿐, 세계 독자를 흔들 만한 힘 있는 작가가 많다. 넷플릭스가 완성된 콘텐츠에 사후적으로 자막과 더빙을 입히는 게 아니라 번역까지를 창작의 일부로 포함시킨 것은 콘텐츠 속 언어의 위력을 누구보다 잘 알아서일 것이다. 한국문학의 체계적 번역 지원에 참고로 삼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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