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프라 구축, 설비 확충, 연구개발 지원을 담은 ‘반도체특별법’이 조속히 국회를 통과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10일 삼성전자 평택캠퍼스를 찾아 “미국과 유럽, 일본이 앞다퉈서 반도체 지원 정책을 내놓고 있는 만큼 우리도 더 이상 지체할 수는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세계 1등 반도체 국가는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하다”며 “당이 이를 확고히 뒷받침하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막상 민주당은 반도체특별법 처리와 관련해 10월 14일만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해당 날짜는 반도체특별법이 4월 17일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지 180일이 지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넘어오는 날이다. 반도체특별법은 국민의힘이 위원장을 맡은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관이다.
앞서 민주당은 대선 시기에 산자위에서 합의 처리에 실패하자 국회 본회의에서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했다. 당시 국민의힘은 반도체특별법에 주 52시간 근로 예외조항을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민주당은 해당 조항을 뺀 나머지 내용으로 반도체특별법을 처리하자고 주장하며 평행선을 달렸다.
반도체특별법은 이재명 대통령이 민주당 후보로 선출된 다음 날인 4월 28일 발표한 ‘1호 공약’이었다. 당시 이 후보는 “반도체 경쟁력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지원과 투자가 필수적”이라며 “반도체특별법 제정으로 기업들이 반도체 개발·생산에 주력할 수 있게 하겠다”고 했다.
결국 이 대통령의 1호 공약이 정부가 출범한 지 100일이 지나도록 사실상 방치된 셈이다. 당 핵심 관계자(의원)는 “민생경제협의체가 구성되면 논의하려 했다”고 전했다. 민생경제협의체 구성은 국민의힘이 민주당의 정부조직법 강행 처리에 반발해 불발된 상황이다. 이에 민주당 내에서는 반도체특별법에 대해 11월 내 처리를 전망하고 있다. 해당 법안이 지난해 7월 3일 발의된 것을 감안하면 1년 4개월 남짓 소요되는 셈이다.
집권여당이 이처럼 여야 간 이견이 있는 법안에 대해 끝까지 합의를 시도하거나 대국민 여론전을 벌이는 등의 노력을 하지 않으면 일부 국정과제 이행에 지연이 속출할 수밖에 없다. 국민의힘이 위원장을 맡은 7개 상임위 소관 법안의 경우 국민의힘이 끝까지 반대하면 반도체특별법처럼 180일 넘게 걸리는 패스트트랙을 지정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기 때문.
당장 금융감독위원회 설치와 관련한 11개 법안이 25일 본회의에서 이재명 정부 들어 처음으로 패스트트랙에 지정될 전망이다. 국민의힘이 위원장을 맡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와 정무위원회 소관 법안들이다. 이와 같이 경제, 민생과 밀접한 산업, 조세, 금융 분야 법안 처리에 180일씩 허송세월할 우려가 있는 것. 이런 지연을 없애려면 민주당이 내년 6월 22대 국회 하반기 원 구성 때 상임위원장을 독식하는 과격한 방법밖에 없다.
이는 민주당이 국민의힘과의 협치를 경시한 결과이기도 하다. 집권여당은 여차하면 패스트트랙에 의존할 생각을 버리고 야당과 대화하며 양보할 것은 양보하고 얻어낼 것은 얻어내야 할 것이다. 민주당이 치밀한 논리로 국민 여론을 모으고 여당을 설득해 신속 처리하는 능력을 보여주길 바란다. 그것이 당이 배출한 이 대통령의 공약을 책임지는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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