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새샘]토지거래허가 시대의 ‘시계 제로’ 부동산시장

  • 동아일보

이새샘 산업2부 차장
이새샘 산업2부 차장
서울 전역과 경기 남부 12개 지역이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된 지 약 한 달 반이 지났다. 여전히 집값이 오르고 있긴 하지만, 거래 자체가 매우 어려워지며 그 오름 폭 자체는 어느 정도 진정됐다. 하지만 집을 사고팔 때마다 구청 허가를 받으라는 유례없는 규제가 부동산 시장을 ‘시계 제로’ 상황으로 만들며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우선 거래량이 정확히 파악되지 않는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서울 노원구에서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당일인 10월 20일부터 12월 3일까지 매매계약이 완료돼 신고까지 이뤄진 거래는 모두 108건이다. 하지만 같은 기간 노원구에서 이뤄진 토지거래 허가는 총 460건이 넘는다. 4배 이상 차이가 나는 것이다. 비슷한 상황이 새로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된 대부분 지역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토지거래 허가에 걸리는 물리적인 시간 때문이다.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매수자와 매도자는 매매를 하겠다는 약정만 맺은 뒤 구청에 허가를 신청한다. 이후 제출 서류 검토를 거쳐 구청 허가가 내려지면 정식으로 계약을 맺는다. 구청 허가를 받는 데 최소 2주 정도가 걸린다고 하고, 계약을 맺은 뒤 신고하는 데도 한 달이라는 기간이 주어진다. 거래 신고에 필요한 서류와 절차도 늘어났다. 거래량은 부동산 시장이 얼마나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통계다. 이제는 한 달 반 이상이 지나야 시장의 움직임이 정식 거래량 통계에 반영된다는 얘기다.

실제 거래 시점보다 늦게 거래신고가 이뤄지면서 현재 시장에서 실제 거래되는 가격이 얼마인지도 정확히 파악하기가 어려워졌다. 강동구의 4000채가 넘는 한 단지에서는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이후 한 건도 거래신고가 이뤄지지 않았다. 규제 직전까지 거래된 가격은 전용 59㎡ 기준 17억 원대에서 19억 원대 중반까지 다양하다. 현재 나와 있는 매물 호가는 18억 원대에서 22억 원까지 천차만별이다. 매매 약정만 맺고 신고는 하지 않은 거래가 있을 수 있지만, 얼마에 거래됐는지는 알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집을 사려는 사람들은 현재의 적정 가격이 얼마라고 생각하고 집을 알아봐야 할까. 앞으로 집값이 오를지, 거래가 활발할지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적게는 수천만 원, 많게는 수억 원의 차이를 만드는 판단이다. 특히 현 규제 아래에서 집을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실거주 목적의 무주택자 혹은 1주택자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이들이 ‘깜깜이’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깜깜이 상태는 사람을 불안하고 초조하게 만들기 마련이다. 거래가 거의 되지 않는데도 호가가 오르는 것은 이런 ‘정보 불균형’ 상태를 집주인들이 ‘밀당’에 이용하고 있기 때문인 면이 크다.

김용범 대통령정책실장은 최근 인터뷰에서 “토지거래허가제는 임시조치”라며 “길게 끌고 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요억제책은 집값 상승 압력을 잠시 눌러놓는 효과를 낼 뿐이다. 그리고 규제로 인한 불확실성은 그 자체로 이 압력을 부풀리는 재료가 된다. 시장에 거래 가능한 집 자체가 늘어나고 거래가 자연스럽게 일어나야 이 압력을 낮출 수 있다. 토지거래허가제가 정말로 임시조치로 남기를, 누구보다도 무주택 서민과 청년층이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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