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신진우]‘화려한 복귀’ 트럼프, 움츠러드는 다자회의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6월 22일 2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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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우 워싱턴 특파원
신진우 워싱턴 특파원
‘트럼프와의 만남 시간은 충분히 확보하되, 충돌은 피하라.’

15∼17일 캐나다 캐내내스키스에서 열렸던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당시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참석국들의 ‘임무’는 사실상 이 한 문장으로 수렴됐다. 이번 G7 정상회의는 재집권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처음 참석한 다자 외교 무대여서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큰 관심을 모았다. 특히 다른 정상에겐 트럼프 대통령과의 ‘개별 면담’이 꼭 필요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 폭탄 등을 피하기 위해 어떻게든 그와 면을 트고, 그를 설득할 기회가 절실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양자협상 무대 전락한 G7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하고 다른 정상들은 그와의 양자 회담에만 몰두하다 보니 우크라이나 전쟁 휴전, 중동 정세, 세계 경제 등 다자회의 의제가 실종됐다는 점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회의 개막 전부터 “정상들의 목적은 한 가지다. 트럼프를 만나고, 그와의 마찰을 피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뉴욕타임스(NYT) 또한 “의장국인 캐나다부터 ‘트럼프 리스크’에 따른 외교적 재앙을 피하고, 미국과의 협력 관계 유지에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했다.

이에 따라 경제, 안보, 기후, 인권 등 ‘글로벌 공공재’에 대한 공동대응 기반을 마련하는 장으로 통했던 G7 정상회의는 트럼프 대통령의 양자 협상 무대로 전락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있는 장소만 미국 수도 워싱턴에서 캐나다로 옮겨졌고, 전 세계가 ‘관세’를 부르짖는 그의 입만 바라봤다. 캐나다로 출발하기 직전 “우리는 몇몇 새로운 ‘무역합의’를 이룰 것”이라며 통상 압박을 예고한 트럼프 대통령은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와의 첫 회담에서부터 “나는 관세 개념이 확고한 사람”이라고 외쳤다.

심지어 그는 G7 정상회의 일정을 끝까지 소화하지도 않았다. 이스라엘과 이란 간 충돌이 이어지고 있는 중동 상황 관리를 이유로 한밤중 조기 귀국했다. 납득 못 할 명분은 아니었지만 G7의 ‘원톱’이 갑자기 사라지자 회의의 위상 또한 추락했다. 중동·우크라이나·중국 등 지정학적 위기에 따른 공동 대응, 공급망 안정화, 디지털세 조율 등 산적한 다자 과제들은 그의 조기 귀국에 완전히 묻혀버렸다.

‘거래 중시’ 트럼프, 다자 체제 회의적

24∼25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개막을 앞둔 지금도 상황이 비슷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참석 국가들에 얼마나 많은 방위비 증액을 요구할지, 그가 관세 등 통상 펀치는 어떻게 날릴지 등에만 맞춰져 있다. 주최 측은 다자회의를 선호하지 않는 트럼프 대통령의 성향을 고려해, 아예 32개 회원국이 참석하는 본회의는 딱 한 차례만 열기로 했다.

이 같은 흐름은 트럼프 2기 행정부 내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1기 때부터 미국의 국익을 최우선하는 ‘거래 중심주의’ 정책을 주창해 왔다. 또한 그는 다자 체제를 불신하는 쪽에 가깝다. 이런 그에게 맞추느라 주요국 정상이 모두 ‘트럼프와의 협상법’에만 골몰하다 보니 다자 의제는 더욱 밀리는 모양새다.

역사적으로 다자회의 무대는 중요한 양자 논의의 장으로 활용돼 왔다. 다만, 다자 의제가 양자 회담에 묻혀 일방적으로 사라지는 상황이 반복되면 다자주의 체제는 아예 복원하기 힘들 만큼 무너질지 모른다. 이는 장기적으로 미국에도 손해다. 중국·러시아 등 권위주의 세력에 맞선 자유 진영의 단합된 메시지와 해결책 마련 움직임이 흐려지면 미국의 리더십 기반 역시 흔들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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