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 사이]원산 관광지구는 왜 만들었을까?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6월 30일 2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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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오른쪽)이 지난달 24일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준공식에 참석해 아내 이설주(왼쪽), 딸 김주애와 함께 관광지구를 둘러보고 있다. 조선중앙TV 캡처
김정은(오른쪽)이 지난달 24일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준공식에 참석해 아내 이설주(왼쪽), 딸 김주애와 함께 관광지구를 둘러보고 있다. 조선중앙TV 캡처
주성하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주성하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반동사상배격법’과 ‘청년교양보장법’이 두 눈을 부릅뜨고 있는 북한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대규모 관광단지가 생겨났다. 북한은 1일부터 2만 명 숙박 규모의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를 개장한다고 밝혔다. 지난달 24일 관광지구를 아내, 딸과 함께 방문한 김정은은 활짝 웃고 있었다. 관광의 ‘관’자만 알아도 저렇게 웃고 있을까 싶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관광을 ‘다른 지방이나 다른 나라의 풍습 풍광 문물 등을 유람하는 산업’으로 규정했다. 그런데 원산 관광지구는 해안에 숙박 시설과 부대시설만 잔뜩 들어서 있을 뿐, 방문객이 지역 주민과는 접촉할 수 없는 가두리 양식장처럼 조성됐다.

북한이 이곳을 찾은 외국인들에게 자유로운 원산 시내 관광을 허락할 수 있을까. 어림도 없는 일이다. 이곳에선 물놀이밖에 할 것이 없지만 감수해야 할 위험 부담은 매우 크다. 옷을 입어도 사회주의 양식에 맞는지 따져봐야 하고 애정 행위도 못 하며 사진을 찍을 때엔 이색적 장면인지 깊이 고민해 봐야 한다. 관광지의 필수 요소라고 할 수 있는 음악도 체제 찬양 가요만 듣게 될 것이다.

반동사상배격법에 따르면 ‘사회주의 사상 문화와 우리 식의 생활양식에 배치되는 다른 나라 영화나 녹화물, 편집물, 도서, 노래, 그림, 사진 같은 것을 보았거나 들었거나 보관한 자 또는 유포한 자는 노동교화형, 정상(情狀)이 무거우면 5년 이하의 노동교화형에 처한다’고 돼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나 미국, 일본 같은 적대국 노래를 들으면 처벌 강도가 두 배 더 심해서 최소 5년, 정상이 무거우면 10년 형이다.

청년교양보장법에 적시돼 있는 처벌 조항은 너무 많아 꼽기도 버겁다. ‘성 불량 행위, 음탕한 행위, 도박 행위, 종교와 미신 행위, 이색적인 옷차림과 몸단장, 저속하고 몰상식한 행위, 이혼과 조혼, 이색적인 장면을 연출·촬영·편집하는 행위’ 등이 모두 처벌 대상이다.

외국인들에게는 그나마 좀 예외를 두겠지만 북한 사람들과 함께 이용하기 때문에 관광지 전체적인 분위기는 북한 규정에 따라야 할 것이다.

관광지를 운영하는 목적은 돈을 벌기 위해서다. 하지만 원산 관광지구에서 어떻게 돈을 벌지 기자는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러시아나 중국에서 비행기와 열차, 배로 기껏 싣고 와야 하루 수천 명 규모에 지나지 않는다. 가겠다는 사람이 줄을 섰다는 가정하에 그렇다.

한국 대표 관광지 제주도는 지난해 1378만 명의 관광객이 찾았다. 하루 평균 3만7750명이 찾은 셈이다. 외국인은 290만 명으로 하루 평균 8000명이 되지 않는다. 성수기라고 특별히 많이 오는 것도 아니다. 지난해 8월 제주 관광객은 936만 명으로 하루 평균 3만 명 정도인데 내국인이 83.7%, 외국인이 16.3%를 차지했다.

서울 면적 3배인 제주도 하루 외국인 관광객이 8000명도 되지 않는다는 점을 떠올리면 원산의 손바닥만 한 지역에 가두리처럼 만든 2만 명 수용 관광지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일인지 가늠이 될 것이다.

러시아 전상자(戰傷者) 요양 시설로 전용한다고 해도 가겠다는 러시아인 자원자가 없을 것이다. 이미 북한은 러시아군 부상병 수백 명을 원산에 받았는데, 이 부상병들의 경험담이 공유되고 있다. “의료 서비스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 식사는 맛이 없고 고기가 부족했으며 저녁에 밖을 돌아다니거나 지역 주민과 접촉하는 것이 금지였다.” 결정적인 것은 술을 구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러시아 사람들에게 술을 구할 수 없는 곳은 지옥이나 마찬가지다. 또 전상자들이 가득한 곳에 굳이 돈을 써서 관광을 갈 사람이 누가 있을까 싶다.

아무리 생각해도 왜 지었는지 답이 나오지 않는다. 김정은은 앞으로 여러 지역에 서로 다른 유형의 유망한 대규모 관광문화지구를 건설하겠다고 공언했다. 지어 놓은 마식령스키장, 양덕온천문화휴양지, 삼지연 포태리관광지구가 파리만 날리고 있는데 또 만들겠다고 한다.

관광 상식으론 이해가 되지 않으니, 김정은과 그 가족을 위한 피난 시설이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든다. 원산이나 삼지연 관광지들은 김정은이 특별히 좋아하는 별장 근처에 있다. 유사시 외국인 관광객들 속에 재빨리 숨어 폭격을 피할 수 있다. 그런 목적이라면 이런 관광지들은 김정은에게 돈으로 따질 수 없는 소중한 것일 수도 있다. 호텔 아래 깊이 숨겨진 벙커는 북한이 오래전부터 사랑해 온 조합이기도 하다.

#북한#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김정은#이설주#김주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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