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 사이]5배년 계획이 된 5개년 계획

  • 동아일보

지난주 평양에서 열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13차 전원회의 확대회의. 회의를 주재한 김정은은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 완수를 선언했다. 노동신문 뉴스1
지난주 평양에서 열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13차 전원회의 확대회의. 회의를 주재한 김정은은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 완수를 선언했다. 노동신문 뉴스1
주성하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주성하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김정은이 9일부터 11일까지 열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13차 전원회의 확대회의에서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 완수를 선언했다. 예상했던 바이지만 헛웃음이 나는 것은 숨길 수가 없다. 회의장에 있던 간부들도, 회의 내용을 들을 인민도, 심지어 김정은도 5개년 계획이 완수됐다고 스스로 믿지 않을 것이다.

2021년 1월 8차 당대회에서 발표된 5개년 계획의 주요 목표는 △금속 부문의 주체 철 생산 체계 완성 및 철강재 증산 △화학공업 자체 기술역량 강화를 통한 화학제품 증산 △조·수력발전소 건설 및 핵동력 공업(원자력발전) 창설 준비를 통한 전력 생산 강화 등이다. 이 중 하나라도 진전된 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간부나 인민은 김정은의 완수 선언이 내심 반가울 것이다.

당시 8차 당대회 주석단에 선 김정은은 잔뜩 굳은 표정으로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 수행 기간이 끝났지만 내세웠던 목표는 거의 모든 부문에서 엄청나게 미달됐다”며 “쓰라린 교훈”이라고 말했다. 2016년 노동당 7차 대회에서 ‘휘황한 설계도’라고 제시한 5개년 계획이 모두 실패했음을 자기 입으로 실토한 것이다. 북한 지도자가 실패를 자인하는 것은 좀처럼 보기 드문 일이라 뜻밖이었다.

하지만 그는 실패의 원인을 간부들에게 돌렸다. 당시 김정은은 “비상설 중앙검열위원회를 조직해 실태를 파악하고 잘못한 것은 무엇인가, 그 원인은 무엇인가 하는 것을 비롯해 그 진상을 파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완수했다고 했으니 간부들은 검열은 피할 수 있게 돼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쉴 것이다.

김정은이 5개년 계획 완수를 선언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이해가 된다. 10년째 실패를 인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북한은 1954년부터 ‘3개년 계획’ ‘5개년 계획’ ‘6개년 계획’ ‘7개년 계획’ 등 10회가 넘는 계획을 발표했다. 계획대로라면 북한은 세상에서 제일 잘사는 나라가 돼 있어야 하지만 현실은 아프리카 빈국 수준보다 못한, 우리가 다 아는 그대로다.

그럼에도 북한은 계획 중독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70년 넘게 ‘80일 전투’니 ‘100일 전투’니 달달 볶여 온 북한 인민만 불쌍할 따름이다.

지난 약 5년 동안에도 인민은 평양 5만 가구 주택 건설이나 원산갈마관광지구 건설, 지방산업공장 40개 건설 등에 동원돼 정신없이 삽질만 했다. 그런데도 김정은이 시찰하는 지방산업공장 사진들을 보면 한국의 변변찮은 중소기업 규모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들이다. 원산갈마관광지구 건설은 또 무슨 의미가 있는가. 관광업 활성화라는 목표와 동떨어져 파리만 날리면 돈 낭비에 불과한 것이다.

김정은이 실패를 인정하든 완수를 선언하든 사실 큰 의미는 없다. 인민은 이미 북한이 5년 동안 어떻게 변했는지 피부로 체감하고 있다. 계획이란 것도 다 잘 먹고 잘살려고 내거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5년간 인민 생활은 ‘고난의 행군’ 이후 최악의 수렁에 빠져들었다.

북한 민생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때 제일 중요하게 활용되는 지표는 쌀값이다. 2020년 10월 1kg에 북한 돈 4500원 수준이던 쌀값은 올해 10월 3만 원을 넘었다. 최근 좀 하락하긴 했지만, 아무튼 5배 안팎의 상승률이다. 북한 역사에서 5년 동안 쌀값이 다섯 배 오른 적은 없다. 7차 당대회와 8차 당대회 사이 5년 동안에도 쌀값은 거의 비슷했다.

환율도 2020년 10월, 1달러에 북한 돈 8000원 수준이던 것이 올해 10월엔 3만8000원이 됐다. 이것도 거의 다섯 배로 상승한 것이다. 장마당 통제는 더 강화돼, 시장에 가서 돈을 주고도 구하지 못할 생필품이나 식료품이 훨씬 많아졌다.

무슨 계획을 내놓고 다그칠수록 점점 못살게 되는 것은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지난 5년은 특히 심했다. 결론적으로 8차 당대회의 5개년 계획은 물가를 다섯 배 이상 상승시킨 5배(倍)년 계획에 불과할 뿐이다.

이러고도 김정은은 위대한 성과 운운하고 있다. 만약 그가 내년 1월 9차 당대회에서 과거를 ‘승리의 5년’이라고 자평한다면, 이는 5년 동안 그의 얼굴 피부도 다섯 배쯤 두꺼워졌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리고 다시 ‘휘황한 5개년 계획’이라고 제시한다면, 아마 고막까지도 다섯 배쯤 두꺼워져서 인민의 아우성이 더는 들리지 않는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김정은#노동당 중앙위원회#5개년 계획#국가경제발전#북한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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