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에서 쓰는 편지[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509〉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7월 11일 2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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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가 살 수 있는 곳에 독수리가 살고 있었습니다
나도 내가 살 수 있는 곳에 나를 살게 하고 싶었습니다

자작나무가 자꾸만 자작나무다워지는 곳이 있었습니다
나도 내가 자꾸만 나다워지는 곳에 살게 하고 싶었습니다

내 마음이 자꾸 좋아지는 곳에 나를 살게 하고 싶었습니다
내가 자꾸만 좋아지는 곳에 나를 살게 하고 싶었습니다

(하략)

―안상학(1962∼ )


필자는 해외여행 다녀온 티를 내는 시는 좋아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대체로’ 좋아하지 않는다. 시인이 실제 어느 나라, 어느 지역을 방문했는지 알게 되는 시. 시인이 그곳에서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먹었고, 누구를 만났는지 일기처럼 쓴 시. 낯선 여행지에 즉물적으로 반응하는 시는 여행기다. 소셜미디어를 보면 신기한 곳에 나 대신 놀러간 사람 이야기가 넘치는데 시가 굳이 필요할까 싶다.

이 시는 제목에 ‘몽골’이 붙었지만, ‘대체로 좋아할 수 없는 시’에 속하지 않고 ‘너무 좋아할 수 있는 시’에 속한다. 너무 좋아하는 여행지의 시란 시인을 위한 기록의 시가 아니라 독자를 위한 새로움의 시를 의미한다. 이 시가 진짜 몽골을 다녀와서 썼는지 몽골을 품에 안고 썼는지 몽골을 상상해서 썼는지 모를 시여서 특히 좋다. 왜냐하면 그래야 저 몽골이 시인의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이 되기 때문이다.

몽골을 몰라도 시는 이해할 수 있다. 거기에는 독수리와 자작나무가 살고 있다. 독수리는 제게 어울리는 곳에 살고 있고 자작나무는 자작나무답게 살고 있다. 나도 나답게, 나로 살고 싶었다는 것을 이 시를 통해 발견하게 된다. 여행과 시의 묘미이자 공통점은 역시 ‘발견’에 있다.

#독수리#몽골#시#안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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