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연 시인이 문장은 ‘노래’라는 시의 중간 즈음 등장한다. 잊고 싶지 않아서 이 페이지의 귀퉁이를 접었다. 이 구절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레오의 생각에 동의하지 못한 채로 이 시와 잠시 어긋나기 시작했다. 자연에 존재하는 것은 인간이 만든 것과 비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다른 차원이라고 생각했다. 다음 구절은 이렇게 진행된다. “나는 아니라고 하고,/그러면 레오가 말한다/기다렸다가 좀 보세요” 정확히 3초 뒤에 나는 레오의 생각에 동의하게 됐다. 루이즈 글릭의 시는 대체로 이런 방식으로 읽는 이를 쥐락펴락한다. 모퉁이를 돌면 무엇이 나타날지 알 수 없다는 느낌 때문에 모퉁이가 많은 골목길을 좋아하던 어린 시절로 나를 데려가는 듯하다.
‘기다렸다가 좀 보세요’. 이 문장은 확신이 담겨 있어서 좋다. 권유가 담겨 있어서 더 좋다. 기다림에 이미 포함돼 있는 인내심과 시간은 또 어떤가. 인내심은 조바심이 포함되지 않을수록, 시간은 방황과 실패를 골고루 통과할수록, 이 문장의 깊이에 부합한다. 이 문장은 단순하며 특별할 게 없는 단어들로 구성돼 더 놀랍다. 예술가들의 창작 노트를 보여주고 그에 따른 에피소드를 들려주는 애덤 모스의 ‘예술이라는 일’에서 글릭은 이 시를 쓰게 된 과정을 차근차근 설명한다. 그녀는 꿈속에서 만난 문장을 첫 줄에 놓고, 우연히 해둔 메모를 마지막 행으로 두기로 한다. 그 가운데 즈음에 ‘기다렸다가 좀 보세요’라는 문장이 있다.
처음과 끝의 형태를 어떤 방식으로 갖추게 됐는지, 그 설명을 읽고 나서 다시 시집을 펼쳤다. 인간이 만든 것과 자연이 만든 것들. 그 사이엔 시가 있다. 인간도 자연도 제대로 보여준 적 없는 아름다움을 시는 도맡고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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