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혁 극작가·연출가필자는 이십 년 가깝게 연극을 하면서 살고 있지만 누군가가 연극을 왜 하냐고 물으면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 대신 말없이 이 시를 들려준다. 꽃은 뿌리를 땅에 내리고 살아간다. 하지만 고개는 늘 하늘을 향한다. 햇빛을 받고, 빗방울을 맞고, 바람에 흔들린다. 그렇게 하늘을 바라보며 꽃은 자란다.
처음 연극을 시작하는 배우는 마치 하나의 점 같다. 무대 위에 제대로 서 있을 수도 없고, 목소리를 객석으로 내보낼 수도 없다. 하지만 연습을 거듭할수록 배우는 성장한다. 햇빛 같은 조명 아래에서 빗방울 같은 눈물을 흘리며 바람처럼 몰아치는 갈등과 상처에 방황하다 마침내 자신의 걸음으로 무대를 걷고 자신의 목소리를 객석에 쏟아내는 순간이 온다. 그제야 알게 된다. 자신은 하나의 점이 아니라,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던 꽃을 머금은 씨앗이었다는 것을.
무대뿐 아니라 객석에서도 꽃은 피어난다. 세상의 비바람을 온몸으로 맞아가며 자신의 길을 걷던 사람들이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기적처럼 한자리에 모인다. 어둠 속에 조용히 앉아서 침묵의 시간이 잠시 흐르고 아침 해가 떠오르듯 조명이 켜지는 순간, 관객의 마음속에도 빛이 찾아온다. 무대 위에서 연극이라는 시간이 흐르기 시작한다. 배우들이 현실의 중력을 벗어나 상상의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동안 관객의 마음속에도 각자의 빛과 비와 바람으로 충만해진다. 눈앞의 현실을 바라보느라 잠시 묻어두었던 자신만의 씨앗들이 얼어붙은 마음을 뚫고 꽃으로 피어난다. 그 꽃은 각자의 하늘을 향해 자라난다. 잃어버린 꿈의 하늘을, 담담해진 용서의 하늘을, 주먹을 불끈 쥐는 시작의 하늘을. 그렇게 무대 위에도, 객석 위에도 각자의 고유한 꽃이 피어나며 극장은 어느새 아름다운 마음의 정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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