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날까지는 이 세상에 바보가 아닌 존재, 우리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존재가 하나쯤은 있다고 생각해야 하네. 그러다가 적절한 순간에 그 사람 역시 바보임을 깨닫는 것이 바로 지혜일세.”
―움베르토 에코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원소윤 작가·스탠드업 코미디언‘죽음에 담담하게 대비하는 방법’ 꼭지에 나오는 내용이다. 세상이 바보로 가득 찬 골짜기임을 알게 되면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다만 이 지고의 계시는 거저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며 에코는 한평생 사상을 공부하고 세태를 살피며 논증을 분석하길 권한다. 노력을 기울여야만 ‘결국 모두가 바보’라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얘기다. 에코의 혜안을 읽자마자 번뜩 붓다의 가르침이 떠올랐다.
불교의 실천 원리인 팔정도(八正道)를 따르기 위해서는 성실히 사는 수밖에 없기에. 팔정도에서의 ‘정견(正見)’이란, 옳은 견해를 세우는 게 아닌 내가 옳다고 믿는 견해를 내려놓는 것이다. ‘정사유(正思惟)’ 또한 옳은 것을 사유하는 게 아닌 그런 생각 하기를 멈추는 것이다. 정견을 얻기 위해, 즉 옳다고 믿는 견해를 내려놓기 위해 선행해야 하는 것은 옳다고 믿는 견해를 가져 보는 것일 테다. 정사유의 경우도 마찬가지. 옳다고 믿는 사유를 멈추기 위해 우리는 먼저 그런 사유를 시작해 봐야 한다.
옳다고 믿는 견해를 가져 보려 한다. 옳다고 믿는 사유를 시작해 보려 한다. 수고에 수고를 아니, 헛수고에 헛수고를 거듭하려 한다. 종국에 이 모든 것을 내려놓기 위해, 멈추기 위해 붓다와 에코의 가르침 또한 참으로 덧없으며 이들마저 바보임을 깨닫는 날, 열반에 이르게 되겠지. 하지만 아직 내게 두 사람은 너무나 천재! 하늘의 부름을 받기엔 때가 이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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