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움츠린 채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일그러진 얼굴, 초점 잃은 큰 눈, 위축된 자세 등 여자는 두려움과 불안에 떨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대체 그녀는 누구이고, 무엇 때문에 이러고 있는 걸까?
이 인상적인 초상화는 섕 수틴이 그린 ‘미친 여자’(1920년·사진)다. 강렬한 색채와 거친 붓질, 심리적으로 불안정해 보이는 표정, 과장된 표현 등 그의 그림 특징을 잘 드러내는 대표작 중 하나다. 수틴의 원동력은 유년 시절의 트라우마와 제1, 2차 세계대전의 고통에서 기인한다.
1893년 러시아 제국 리투아니아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수틴은 혹독한 가난과 차별을 겪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지만 가난한 재봉사였던 아버지는 이를 못마땅해했다. 심지어 아들이 초상화를 그릴 때면 매질을 했다. 그럼에도 수틴은 꿋꿋하게 화가의 꿈을 키웠다.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할 때도 그는 주류 미술계에 속하지 못한 이방인이었다. 대신 같은 유대계 외국인 화가였던 모딜리아니와 친하게 지냈다. 이 그림은 모딜리아니가 사망한 해에 그렸다. 친한 친구의 죽음으로 극도의 불안감 속에 지내던 시기였다.
모델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의 주변 인물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림 속 여자는 표정과 몸짓으로 내면의 상태를 전달한다. 크게 뜬 눈과 일그러진 표정은 광기와 고통을 의미하고, 움츠린 어깨와 흐트러진 머리카락은 불안과 취약함을 암시한다. 강렬한 붉은 드레스와 거친 붓질은 격렬한 감정 상태를 드러낸다.
어쩌면 이 여인은 지옥 같은 세상을 마주한 인간의 고통과 절망, 두려움을 대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전쟁과 폭력이 난무하던 광기의 시대를 어찌 제정신으로 살아낼 수 있었을까. 이렇게 수틴은 개인의 초상을 통해 자신이 살던 시대의 고통과 불안을 극적으로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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