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항해의 시작 [이은화의 미술시간] 〈377〉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7월 2일 2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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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로 산다는 건 매일 용기를 내는 일이다. 그 삶은 두렵지만 포기하지 않는 도전의 반복이다. 자기 확신이 없으면 절대 가기 힘든 길이다. 모든 예술가에겐 무명 시절이 있는 법이다. ‘항해’(1911년·사진)는 무명의 에드워드 호퍼가 예술가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용기와 확신을 준 작품이다.

호퍼는 1913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아모리쇼’에서 생애 첫 그림을 팔았다. 작품 값은 250달러. 젊은 화가에겐 꽤 큰 액수였다. 그 작품이 바로 ‘항해’다. 서른한 살의 호퍼는 당시만 해도 자신의 그림 스타일을 찾지 못했다. 게다가 작품이 팔리지 않아 연일 좌절을 겪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작품 판매는 단순한 경제적 수익 이상을 의미했다. 예술가의 길을 계속 가도 되겠다는 확신을 심어준 항해의 시작이었다.

그림 속 배경은 미국 매사추세츠주에 있는 케이프 코드 해안이다. 호퍼가 대도시 생활에 지치거나 예술적 영감을 얻기 위해 여름마다 종종 찾던 곳이다. 그림에는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요트가 흰 돛을 휘날리며 바다를 가르는 모습이 빠른 붓질로 묘사돼 있다. 낮게 그려진 수평선은 짙은 바닷물과 밝은 하늘을 선명하게 구분 짓는다. 배에 탄 인물들은 세부 묘사가 과감하게 생략돼 있어 존재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그 대신 감상자들의 상상에 맡긴다. 언뜻 보면 평화롭고 낭만적인 해상 풍경 같지만 배 안은 그들이 느낄 긴장감과 고독감,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을지 모른다.

첫 작품이 팔렸을 때 호퍼는 분명 기뻤을 테다. 무명 생활을 곧 끝낼 수 있다는 기대도 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속적인 작품 판매와 성공은 그로부터 10년을 더 기다린 후에야 찾아왔다. 결혼 후 아내의 지원과 홍보 덕에 그는 비로소 고독의 언어로 자신의 예술 세계를 창조했고, 더 큰 예술적 항해를 지속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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