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론/김홍균]재정 체력 지키려면 한국판 ‘Spending Review’ 도입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6월 26일 23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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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경으로 나랏빚 1300조 원, 재정 ‘빨간불’
비기축통화국-저출산 고령화로 구조 취약
정치에 휘둘림 없는 지출점검제도 운영해
네덜란드처럼 불필요 예산 상시 조정해야

김홍균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
김홍균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
정부는 19일 19조8000억 원 규모의 국채 발행을 포함한 30조5000억 원 규모의 ‘새 정부 추가경정예산안(추경)’을 의결했다. 이 추경으로 인해 우리나라의 국가채무(D1: 중앙정부+지방정부 부채)가 2024년 결산 기준 1175조2000억 원에서 단숨에 1300조 원을 넘어서게 되면서 재정건전성에 대한 우려도 한층 커지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광의의 국가채무(D2: D1+비영리 공공기관 채무) 평균 비율은 2022년 기준 110.5%이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의 부채 비율은 53.5%에 불과한데도 우려의 목소리가 큰 것은 단순한 채무 규모보다는, 한국이 처한 구조적 여건 때문이다. 한국이 다른 OECD 국가들과 비교해 재정적으로 더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한국은 비기축통화국이다. 주지하다시피 비기축통화국은 기축통화국과 달리 높은 국가채무비율이 금리 급등, 환율 불안, 자본 유출 등 금융위기로 직결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이유로 스웨덴, 노르웨이 등 OECD 소속 12개 비기축통화국은 낮은 국가채무비율을 유지하고 있다. 2022년 기준 이들 국가의 GDP 대비 채무 평균 비율은 53.1%로, 우리나라보다 낮다.

둘째, 한국은 저출산·고령화 속도가 세계적으로 가장 빠르다. 이는 앞으로 세수보다 지출 증가가 훨씬 가파르게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특단의 조치가 없다면, 한국의 국가채무비율은 OECD 어느 국가보다 빠르게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2019∼2023년 OECD 평균 국가채무비율은 1.7%포인트 상승하는 데 그친 반면, 같은 기간 한국은 10%포인트 이상 증가했다.

이러한 구조적 취약성에도 불구하고 재정건전성을 위한 제도적 대응은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기획재정부는 2020년 국가재정법 개정을 통해 재정준칙을 도입하려 했으나 국회 상임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고, 2023년 당시 여당인 국민의힘이 발의한 재정건전화법 역시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설령 이들 법안이 통과됐더라도 실효성은 낮았을 것이다. 이들 법안은 국가채무비율이나 관리재정수지 적자율의 상한만을 설정했을 뿐, 이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행 수단도, 목표를 위반했을 경우의 제재 조항도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정건전화법이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려면 단순히 채무 및 재정수지 준칙을 설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재정건전성 확보에 성공한 OECD 국가들처럼 이를 실제로 이행할 수 있도록 지출 준칙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 동시에 이미 시행 중인 국가재정운용계획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적 보완도 병행돼야 한다. 따라서 실질적인 재정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재정건전화법 제정과 함께 철저한 제도적 준비와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이보다는 상시적인 지출점검과 조정을 위한 ‘지출점검제도(Spending Review)’의 도입이 보다 실효성 있는 방법이다.

정부 지출은 시대의 변화에 맞춰 유연하게 조정돼야 한다. 그래야 국민에게 과도한 부담을 지우지 않고도 필요한 정책을 추진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독립적인 지출점검위원회를 설치해 이들로 하여금 정부 지출 전반을 검토하고, 불필요한 예산은 과감히 삭감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으면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지출 구조는 관행적으로 계속 유지될 수밖에 없다.

네덜란드는 1980년대 이후 지출점검제도를 제도화해 운영해 왔고, 특히 2008년 금융위기로 인해 재정적자가 확대되자 2010년에 강력한 지출점검을 실시해 20% 지출 삭감안을 만들었다. 이를 예산에 반영해 2010년 5.1%였던 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을 2013년 2.9%로 줄였다.

새 정부가 추진해야 할 정책 과제가 많은 데다, 현재는 경기 둔화와 물가 불안이 동시에 나타나는 복합위기 상황이기 때문에 추경이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한국처럼 외부 충격에 취약한 소규모 개방경제에서는 재정의 기초 체력이 곧 국가의 신뢰이자 경제의 버팀목이 되는 만큼, 불황기일수록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소홀히 해선 안 된다.

장기적으로는 정부의 재정 운용이 정치적 요구로부터 최대한 독립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갖추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이를 단기간에 실현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현실적인 대안으로 강력한 지출점검제도라도 도입했으면 한다. 그래야만 경기 대응과 재정건전성이라는 두 과제를 조금이나마 균형 있게 조화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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