對北공조 다지고, 주한미군 부각 안 돼 선방
對美투자 불투명성, 공동선언 불발은 우려
美 전술에 휘둘림 없이 국익 구체화해 가야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대학원장·전 한국국제정치학회장
총 76회,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출범 이후 지금까지 한미 양국이 정상회담을 한 횟수다. 25일(현지 시간)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이에 76번째 정상회담이 열렸다. 한국의 진보 정부와 미국의 보수 정부 간 회담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이번 회담을 놓고는 유난히 우리 국민의 관심이 컸다. 특히 올 2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서 겪은 곤욕은 우리 국민의 근심에 불을 지폈다.
한미 정상회담 이후 전문가들은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으며,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한 한국갤럽의 여론조사(26∼28일 조사)에서도 이번 회담이 ‘국익에 도움이 됐다’는 응답이 58%로 나타났다. 우려와 달리 공개 회담 내내 두 정상 간 ‘케미스트리’가 잘 맞았다. 이 대통령은 세계 분쟁 해결과 미 제조업 부활을 꿈꾸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심을 전략적으로 활용했고, 트럼프 대통령 역시 북한과 중국으로 상징되는 한국 외교안보 환경의 특수성을 이해했다. 특히 회담 직전 트럼프 대통령이 소셜미디어에 올린 ‘숙청, 혁명’ 관련 문제를 노련하게 해결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국익이라는 큰 그림에서 모든 문제를 따져 볼 필요가 있다. 가장 긍정적인 측면, 가장 우려되는 측면,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지, 이렇게 세 가지를 치밀하게 생각해야 한다.
첫째, 대북 정책에 있어 한미가 확실하게 공조 의사를 밝힌 점, 그리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가 크게 부각되지 않은 점은 긍정적이다. 이번 회담에선 마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백악관에 초대돼 3자 면담을 하는 듯, 대북 유화 정책의 필요성에 대한 언급이 잦았다. 이것이 북한에 어떤 신호를 줄 것인지, 김 위원장이 일단 중국 ‘전승절’ 행사 참석으로 대응하며 북한의 전략적 가치만 높이는 것은 아닌지 당장은 판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한반도 평화를 위한 한미 정상의 확실한 약속 그 자체만으로도 높이 평가할 일이다.
5월 말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의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 공개 발언을 포함해 미국이 주한미군을 당장 어떻게 할 것처럼 긴장감이 돌았던 것에 비하면, 두 정상은 ‘한미동맹 현대화, 국방비 증가, 미국산 무기 구입’으로 주한미군 문제를 정리했다. 후속 조치로 어떤 내용이 나올지, 미국산 무기 구입 규모가 얼마나 될지는 차차 공개되겠지만, 기본적으로 증가되는 국방비에는 국방 인프라 개선과 연구개발(R&D) 항목을 포함할 수 있고 단계적인 접근도 가능하다. 향후 협상만 잘하면 우리가 손해를 보지 않을 수 있다.
둘째,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우리 기업의 대미 투자와 회담 내용의 불투명성이다. 애초에 밝힌 3500억 달러 규모의 한미 금융 패키지 외 이번 회담을 계기로 우리 기업들이 1500억 달러의 직접투자 의향을 밝혔다. 회담 이후 대통령실 3실장 공동 브리핑에서 아직 모든 문제는 협의 중이라고 강조했지만, 3500억 달러 투자 펀드의 운영 주체가 누구인지, 1500억 달러 추가 투자가 우리 산업의 경쟁력 강화에 어떤 이익을 줄 것인지 다소 공허한 측면이 있다.
이런 이유에서 회담 이후 공동성명이 채택되지 않았다는 점에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제기한다. 회담을 문서화하지 않는 것이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특징 중 하나이고, 그의 저서 ‘거래의 기술’에서 밝힌 방식이기도 하다. 그러나 일본, 인도, 이탈리아 등 다른 주요국과의 정상회담에서는 공동성명이 발표된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셋째, 이제 앞으로 어떤 노력을 통해 우리의 이익을 챙길 것인가이다. 알래스카 가스관 개발처럼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 중 슬쩍 흘린 사안들의 경우 미국의 전술에 말려들어서는 안 된다. “중국행 비행기를 함께 타자”고 농담한 부분은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 미중 사이에 낀 한국의 입장을 더 잘 이해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또한 주한미군 기지를 거론한 부분에 대해서는 “주한미군 4만 명”, “미국과 러시아 간 비핵화”처럼 트럼프 대통령의 말실수로 간주하고 넘어가야 하며, 이를 통해 우리 외교가 전문성을 더욱 갖추게 될 것이다.
끝으로 혹시 조현 외교부 장관이 회담 직전 비행기를 갈아타면서까지 워싱턴을 갑작스럽게 찾은 이유가 공동선언을 채택하지 않겠다는 미 국무부와 백악관을 달래기 위함은 아니었는지 추측해 보게 된다. 이번 정상회담은 요즘 국제무대에서 유행하는 표현인 ‘포에버 협상(Forever negotiations)’ 시대의 전형이 됐다. 한미 원자력협정, 방위비 분담금, 인공지능(AI) 협력과 같은 사안들에 대해 투명하게 공개하면서, 한미 간 상충되는 국익이 조화를 이루도록 정부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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