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특검은 尹부부와 검찰이 자초한 업보
단, 채상병 특검엔 ‘거부권 역발상’ 어떨지
권력 절제 보여줘 불신 걷어내는 게 관건
‘통합의 메시지’ 임팩트 있게 던져야 할 때
정용관 논설실장
이재명 대통령의 취임사 중 귀에 쏙 들어오는 문구가 있었다. “통합은 유능의 지표이며, 분열은 무능의 결과다.”
돌이켜 보면 넬슨 만델라의 “잊지 않지만 용서한다”는 원칙을 본받아 박정희·전두환 전 대통령을 용서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지역구도 해소를 위한 선거제 개편을 위해 대연정까지 모색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성공했든 실패했든 통합에 진심이었다고 본다. 다만 이들이 그토록 통합을 추구한 이유는 정치적 신념 외에도 자신들의 권력 기반이 취약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역적 한계, 비주류의 한계를 넘어서야 했던 그들에게 통합은 절박한 과제였던 것이다.
이 대통령은 어떤가. 입법 권력까지 아우른 막강 대통령이란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역시 깨지기 쉬운 유리그릇 같은 권력이기도 하다. 역대 최다 득표이지만 과반은 허용 않은 득표율 배분에서 보듯 민심은 늘 소름이 끼칠 정도로 절묘한 균형을 찾는다.
이 대통령이 대선 전부터 국민을 크게 통합한다는 ‘대통(大統)’을 역설한 것도 이런 팽팽한 민심의 실체, 반대층의 비토 심리를 꿰뚫어 봤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 어떻게 지혜로운 통합의 길을 찾을 것인가.
먼저 국민의힘이 “정치 보복”이라 주장하는 ‘3대 특검’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대통령은 “초보적 정의를 포기해선 안 된다” “통합과 봉합은 다르다”고 했다. 민주주의 복원이 통합의 출발이라는 것이다. 사실 3대 특검 동시 진행은 모두 윤 전 대통령과 그의 힘에 눌려 제 기능을 못 한 검찰 등이 자초한 업보다. 또 이른바 ‘내란 특검’은 국민적 공감대하에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역사적 매듭을 짓고 넘어가야 한다는 점에서, ‘김건희 특검’은 나라를 망가뜨린 농단과 비리의 실체를 규명한다는 점에서 적당히 묻고 넘어갈 수 없다고 본다. 다만 우려되는 건 3대 특검 수사가 방만하고 산만하게 진행되면서 통합의 저해 요인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런 만큼 앞의 두 사건과는 성격이 다른 채 상병 사건은 특검이 아니라 공수처에 그대로 수사를 맡기는 ‘역발상’을 고려해 보는 건 어떨까 한다. 이른바 격노의 진실과 수사 외압의 실체를 밝히는 채 상병 사건은 사안이 비교적 단순하고 검찰과 달리 공수처는 수사의 정당성에도 문제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이 대통령이 채 상병 특검에 대해 거부권 행사라는 고도의 결단을 내리고 다른 두 개의 특검은 중립적이고 신망 있는 법조인을 골라 ‘투명하고 신속하게’ 결론을 내린다는 메시지를 준다면 이것이 주는 정치적 함의는 클 수 있다. 권력의 절제로 ‘적폐 청산 시즌2’라는 반대 진영의 우려를 불식하고 정치 복원의 작은 실마리를 찾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국민의힘이 여전히 자중지란 지리멸렬 상태이긴 하지만 이런 식의 ‘실용적 통합’ 메시지를 한둘 쌓아가며 장차 영수회담의 정례화, 여야 동수의 정책협의체 운영 등 실질적 협치의 제도화로 이어가는 것은 어떤가.
다수가 동의하는 목표를 얻기 위한 지난한 ‘과정’ 자체가 통합이라 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의 통합은 때로 모순적이고 이율배반적 속성을 띠고 있다. 갈 길 바쁜데 시간만 허비하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대통령 지지층은 “내란 정당, 계엄 정당과 무슨 협치냐”는 기류가 팽배하다. 변방의 리더였던 이 대통령 역시 “즉시 성과”로 자신의 ‘유능함’을 과시하고 싶어 할지 모른다. 그러다 자칫 통합과 협치는 말뿐이고 조급함으로 이어질까 우려된다. 자신이 성남시장 시절부터 겪어본 사람이나 대선 도전 과정에서 알게 된 사람, 편하게 쓸 수 있는 사람 위주로 중용하는 협소한 인맥의 함정에 빠질 수도 있다. 초기 인선에서 그런 조짐이 보인다.
지금 국민의 근원적 갈증과 두려움은 “전 국민 25만 원 지원” 같은 심폐소생술 정도로 해소되지 않는다. 양극화 해소, 핵심 산업 경쟁력 제고, 정부 혁신 등 이재명 정부가 추구하는 국가적 핵심 의제가 뭔지, 이를 어떻게 정치 영역에서 ‘함께’ 구현해 낼 것인지를 보여줘야 한다. 무엇보다 미중 충돌 와중에서 어떻게 외교적 좌표를 설정할지, 트럼프 측과의 외교채널을 어떻게 탄탄하게 구축할지 등은 말 그대로 이념과 진영을 넘어서야 할 협치의 영역이다. “통합은 유능함의 지표”라는 근사한 말이 식언(食言)이 되지 않으려면 더욱 열린 자세와 임팩트 있는 메시지가 필요하다. 여전히 미심쩍은 눈으로 팔장 낀 채 보고 있는 절반의 국민 중 5% 정도의 마음만 더 잡아도 성공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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