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주의 하늘속談]여객기는 왜 꼭 2명이 조종해야 할까

  • 동아일보

코멘트
영화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의 한 장면. 설리 기장(톰 행크스 분)은 비행기를 강에 착륙시키기 전까지 끊임없이 부기장과 절차를 교차 확인하고 의견을 묻는다. 영화 화면 캡처
영화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의 한 장면. 설리 기장(톰 행크스 분)은 비행기를 강에 착륙시키기 전까지 끊임없이 부기장과 절차를 교차 확인하고 의견을 묻는다. 영화 화면 캡처
이원주 산업1부 기자
이원주 산업1부 기자
2021년 유럽의 대형 항공기 제조사인 에어버스와 다쏘가 유럽항공안전청(EASA)에 ‘1인 조종사 시스템’을 제안한 적이 있다. 비행기가 이착륙이 아닌 순항 중일 때는 조종사 업무량이 적으니 ‘이착륙 땐 조종사 2명, 순항 땐 조종사 1명’이 근무하는 것을 허가하자는 제안이었다. 한 해 뒤인 2022년에는 유럽 항공사를 중심으로 아예 모든 비행 구간에서 조종사 1명이 조종할 수 있도록 하자는 제안도 나왔다.

이 제조사와 항공사들은 항공기의 자동화 시스템이 크게 향상되어 있고 인공지능(AI)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어 인간 조종사 업무의 상당 부분을 시스템이 대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EASA는 곧바로 타당성 연구에 착수했다. 총 1420만 유로(약 230억5000만 원)를 들여 실시한 연구조사 결과 EASA는 최근 결론을 냈다. “시기상조”라는 결론이었다. 적어도 한동안은, 여객기는 무조건 2명이 동시에 조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연구 결과 1인 조종 시스템을 시행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로는 아무리 최첨단 항공 시스템이라도 조종사들의 ‘생리 현상’까지 해결해 줄 수는 없기 때문이라는 점이 꼽혔다. 쉽게 말하면 ‘화장실에 갈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조사 결과 건강한 조종사 1명은 평균 2시간 9분에 한 번씩 화장실에 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1인 조종 시스템에서 조종사는 비행기가 착륙할 때까지 조종석에서 일어설 수 없다.

항공기 제조사들은 1회용 변기, 군용기나 우주선 등에서 쓰는 기저귀 등의 방안을 제안했지만 모두 민항 여객기에서는 쓰기 어렵다는 결론이 나왔다. 예상 못 한 신체 현상으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도 함께 나왔다.

‘수면’도 문제가 됐다. 십수 시간을 비행하는 장거리 비행의 경우 교대할 조종사가 있더라도 임무 교대 직후 위험도가 높아질 수 있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항공의학적으로 항공 승무원들이 잠에서 깬 뒤 정신이 완전히 들 때까지 약 35분이 소요된다고 한다. 만약 휴식을 취하고 임무를 교대한 조종사가 ‘잠이 덜 깬 상태로’ 긴급하게 판단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제대로 된 판단을 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뜻이다.

1인 조종 시스템으로는 비상 상황에서 사고율을 낮추기 위해 조종사 2명이 서로의 행동을 ‘교차 확인(Cross Check)’하는 과정을 거칠 수 없어 위험도가 높아진다는 우려도 나왔다. 엔진에 불이 나는 등의 비상 상황이 발생할 경우 조종사들은 어떤 엔진에서 불이 났는지, 현재 어떤 엔진의 소화 시스템을 작동할 준비를 하고 있는지 등을 단계별로 교차 확인한다. “비상 상황에서는 휴식 조종사를 긴급 투입해 2인 시스템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대안이 나왔지만 ‘골든 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우려도 함께 나오면서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유럽의 조종사 단체들은 1인 승무 시스템이 논의에 오르자 강력하게 반대했다. EASA가 이 제안을 ‘기각’한 건 사실상 조종사들의 주장에 힘을 실어 준 셈이다. 하지만 EASA는 이 같은 논의가 ‘폐기’된 것이 아니라 ‘유예’된 것임을 분명히 했다. 환경이 바뀌면 다시 논의할 수 있다는 것이다. EASA는 자동운항 같은 ‘스마트 콕핏’이 혁신적으로 발전하고, 논란이 됐던 부분에 대한 데이터도 충분히 수집되면 이를 다시 논의할 수 있다고 결론 냈다.

#에어버스#다쏘#유럽항공안전청#1인 조종사 시스템#자동화 시스템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