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칼럼]정부가 주가를 올릴 수 있다는 그 허망한 기대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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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피 30% 상승에도 기대 큰 투자자 실망
순항하는 日증시는 ‘밸류업’ 정책 때문일까
日정부, 10여년 전 기업지배구조 개선 유도
현 상승세는 결국 기업 실적과 성장 기대 덕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이재명 정부가 들어서면서 ‘코스피 5,000 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한 여파인지 최근 한국 주가 동향에 실망을 감추지 못하는 투자자가 많아 보인다. 사실 새 정부 출범 이후 주가가 부진했던 건 아니다. 월평균으로 보면 계엄이 선포됐던 지난해 12월과 올해 8월 사이에 코스피는 30.3%나 상승했다. 그런데도 주가 상승 폭에 불만이 많은 것은 코스피 5,000 시대에 대한 기대에도 원인이 있겠지만 아직 과거 고점을 경신하지 못한 탓도 있을 것이다.

최근 들어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나 나스닥종합지수가 역사적 최고치를 경신했다는 뉴스가 들린다. 멀리 미국뿐만이 아니다. 옆 나라 일본의 닛케이지수도 계속해서 역사적 고점을 경신하고 있다. 그래서 코스피가 상대적으로 초라해 보이는 듯하다.

2022년에 부진을 면치 못하던 닛케이지수가 2023년부터 상승하면서 그해 3월에 도쿄증권거래소가 상장 기업을 대상으로 발표한 몇 가지 권고안이 한국 투자가들의 이목을 끌었다. 일본판 ‘밸류업’으로 소개되곤 하는 그 권고안 탓에 한국에서도 정부가 주도하는 ‘밸류업’ 정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그러나 막상 그 권고안을 읽어 보면 별로 특별한 방안이란 게 없다.

사실 일본 기업의 주가가 상승한 것은 기업의 실적이 개선되고 미래 사업에 대한 기대가 커졌기 때문이다. 주식시장을 선진화하고 주주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일본 정부의 노력도 역할을 했지만 그런 노력은 최근 1, 2년이 아니라 이미 10여 년 전부터 추진돼 왔다.

2023년 들어 주가가 상승한 것은 기업 실적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2024년부터 주가가 최고가를 경신하고 있는 것은 기업 실적이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개별 기업을 따로 보면 조금 다른 모습도 보인다. 소니와 히타치는 실적도 좋지만 주가는 그 이상으로 뛰었다. 미래 사업에 대한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반면 일본제철의 주가는 연거푸 경신하는 최대 영업이익에 비해 상당히 초라하다. 중국의 거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는 제철 사업이라 미래가 불안하기 때문이다.

도쿄증권거래소의 권고안은 기업가에게 주주의 투자로 마련된 자본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사용해 주주에게 이익을 안길 수 있을지 그 방안을 주주에게 공표하라고 권고한다. 그리고 그것이 ‘기업지배구조 코드’의 정신임을 강조한다. 한국의 금융감독원에 해당하는 일본 금융청이 2015년에 제정한 이 코드는 상장 기업에 “주주를 포함한 이해 관계자와 협동하면서 중장기적인 수익력 개선을 도모할 것”을 요구한다.

2021년 개정에서는 한국의 코스피 시장에 해당하는 프라임 시장에 상장된 기업에 이사회의 3분의 1 이상을 사외이사로 꾸릴 것을 요구했다. 그런데 사실 일본의 대표적 기업들은 이 요구를 받기 전부터 충분한 지식과 경험을 갖춘 사외이사를 영입하는 데 열심이었다. 외부의 소리를 듣지 않았던 것이 일본 기업 위기의 한 원인이라는 반성 때문이다. 히타치의 경우 현재 이사 12명 중 9명이 사외이사이고 그중 5명이 외국인이다. 그리고 그 면면을 보면 거수기가 아니라 히타치가 하는 사업의 전문가들임을 알 수 있다.

기업 거버넌스 코드에 앞서 2014년에는 ‘스튜어드십 코드’를 책정했다. 그 코드를 조금 의역하면, 기관투자가에게 당신의 투자금은 개인투자자의 소중한 자산이니 당신에게는 투자처인 기업의 지속적 성장과 투자 수익 확대를 위해 노력할 책임이 있다는 내용이다. 이 코드에 의거해 일본판 국민연금으로부터 투자를 위탁 받은 기관투자가들은 투자처인 기업의 주주 회의에서 의결권을 어떻게 행사했는지,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를 사안별로 공표해야 한다.

이 두 코드는 약간씩 개정되면서 조금씩 강화됐다. 이런 노력을 ‘밸류업’이라 한다면 일본판 밸류업은 지난 10년간 지속적으로 추진된 셈이다.

일본의 경험을 보면 주가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결국 기업의 실적과 미래 전망이다. 그리고 정부가 밸류업을 위해 뭔가를 할 수 있다면, 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그리고 금융시장이 선진화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런 정비는 신중한 논의를 거쳐 오랜 기간 꾸준히 추진돼야 한다. 그런 인식과 노력 없이 단기간에 요술 같은 정책으로 주가를 올릴 수 있다고 믿는다면 안타깝게도 그건 허망한 기대에 지나지 않는다.

#코스피#주가 상승#닛케이지수#밸류업#기업 실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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