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이 바라본 美 조지아주 ‘한국인 구금 사태’[콜린 마샬 한국 블로그]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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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린 마샬 미국 출신·칼럼니스트·‘한국 요약 금지’ 저자
콜린 마샬 미국 출신·칼럼니스트·‘한국 요약 금지’ 저자
미국에서 태어나 30년을 살았지만, 모국에서도 가보지 못한 지역이 많다. 그중 최근 한국에 살면서 처음 호기심이 생긴 곳이 바로 조지아주다. 조지아주 출신 미국인들을 만날 때마다 최대 도시 애틀랜타에 한국식당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서고 있다는 말을 듣는다. 또 한국 대기업들이 지사와 공장을 세우면서 현지 한인 공동체도 커졌다고 한다.

한국에 오기 전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에서 살았던 필자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미국 남부의 한인타운은 어떤 모습일지 늘 궁금했다. 한국인 이민 역사가 깊은 서부와 달리 남부는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분위기가 강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새롭게 자리 잡은 한인사회가 어떻게 미국 속에서 뿌리내리고 있는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한국과 조지아주가 그동안 쌓아 온 생산적 관계는 최근 큰 문제에 부닥쳤다. 이달 초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이 단속 작전을 벌여 조지아주 엘라벨에 있는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HL-GA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 475명을 체포, 구금한 것이다. 이 가운데 한국인만 317명에 달했다. 미국 정부는 이들이 합법적인 취업 비자가 아닌 단순 출장 비자로 현장에 투입돼 있었다고 밝혔다. 한국 기업들은 정식 취업 비자 발급 절차가 지나치게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려 불가피했다고 해명한다.

필자가 본 미 소셜미디어에서는 이 사태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해외 투자를 받아들이는 이유는 미국인들에게 일자리를 주기 위한 것인데, 왜 공장을 짓고도 미국인을 고용하지 않았느냐”는 댓글이 이어졌다.

인구 3억4000만 명의 나라에서 적합한 인력을 구하기 어렵다는 기업의 설명은 사실일 수 있다. 그러나 일반 사람들에게는 쉽게 납득되지 않았다. 미국 사회에서 이민과 일자리 문제는 항상 정치적·감정적 반응을 불러오는 민감한 주제다. 그래서 이번 사태는 단순한 행정 절차 위반을 넘어, 한국 기업과 미국 사회 간의 인식 차이를 드러낸 사건으로 비쳤다. 일부 한국 언론은 이번 단속을 ‘배신’이라 묘사했지만, 나는 그것이 한미 관계를 지나치게 단편적으로 해석한 것이라 본다.

이번 논란은 1988년 서울 올림픽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권투선수 변정일은 판정패를 당했고, 일부 한국인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 채 링에 올라 주심을 공격했다. 변정일은 한 시간 넘게 링 위에 앉아 사실상 시위를 이어갔다. 이 장면은 미국 NBC 방송을 통해 전 세계로 생중계됐다. 한국 사회 일부에서는 “우방인 미국이 왜 우리의 치부를 전 세계에 공개했느냐”는 분노가 일었다. 하지만 미국 방송사는 한국을 감싸 줄 이유가 없었다. 그들의 임무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었고, 그것이 곧 언론의 역할이었다.

1980년대든 지금이든, 미국이 한국을 반드시 보호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낀다고 보기는 어렵다. 물론 미국이 한국을 도운 적은 있다. 그러나 그 배경에는 늘 소련이나 중국 같은 적국을 견제하려는 전략적 이해가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과 연합군이 한국을 일본 지배에서 해방시킨 것도, 6·25전쟁에서 북한의 침략을 막아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만약 전후 한반도 분단이 애초에 없었다면, 과연 300만 명이 희생되고 수많은 가족이 갈라지는 참극이 일어났을까? 분명한 것은 미국의 도움 속에는 언제나 철저한 자국의 이해관계가 존재했다는 점이다.

1981년 미 연방항공청(FAA) 소속 관제사들의 대규모 파업 사건도 연상된다. 공무원 신분인 관제사들의 파업은 불법이었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법이 엄격히 집행되지 않아 누구도 처벌을 예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 대통령은 복귀 명령을 내렸고, 이를 거부한 관제사 전원을 해고했다. 이 사건은 미국에서 노조의 힘이 약화되는 전환점으로 기록됐다. 마찬가지로 이번 HL-GA 건설 현장에서의 이민 단속 역시 겉으로는 법 집행이었지만, 실상은 미국 사회의 구조적 이해가 드러난 사건일지도 모른다.

관제사들과 달리 한국은 이제 이런 실상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미국은 언제나 자국의 이익을 먼저 두고 움직인다. 중요한 것은 한국이 이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 틀 안에서 관계를 더 유리하게 재편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조지아주에서 벌어진 이번 사건은 불행한 단속으로만 끝날 것이 아니라, 한국 정부와 기업이 미국 사회의 시각을 더 깊이 읽어내고 장기적인 전략을 다시 세우는 계기가 돼야 한다.

#조지아주#한인사회#미국 이민#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취업 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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