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가 만난 사람]“지자체장 무리한 사업 벌이면 이젠 패가망신”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7월 21일 2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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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 경전철 주민 소송단 오이천, 박순애 씨
교통硏 “하루 이용자 16만명” 예측… 실제 개통 후엔 日 이용 9000명뿐
“예측 90% 밑돌 땐 30년 손실 보상”… 2043년까지 2조원 시민 혈세 낭비
대법 “前시장, 교통硏이 214억 배상”, 12년만에… 단체장 물어내란 첫 판결

용인 경전철 주민 소송단의 오이천(왼쪽) 박순애 씨가 19일 오전 경전철이 시작하는 경기 용인시 기흥역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주민 소송단은 12년 만에 이정문 전 용인시장과 국책연구소인 한국교통연구원이 사업 부실에 책임을 지고 214억6800만 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 확정 판결을 이끌어 냈다. 용인=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대법원은 16일 경기 용인 경전철 사업의 부실 추진과 관련해 이정문 전 용인시장과 한국교통연구원에 214억6800만 원을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확정판결을 내렸다. 민간 투자 사업으로 지자체에 피해를 끼친 지자체장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첫 판결이다. 앞으로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한 지자체장에게 ‘패가망신’에 가까운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2013년 개통한 용인 경전철 ‘에버라인’은 18km 구간에 사업비 1조 원 이상을 투입해 15개 역을 만들었다. 하지만 개통 직후 이용객이 수요 예측치의 5%에 불과했다. 계약서에는 민간사업자에게 30년 동안 최소수익보장(MRG)을 해 준다는 조항까지 담겨 있었다. 2043년까지 발생할 혈세 낭비를 합치면 총사업비는 2조 원이 넘을 수 있다. 소송은 지역 주민들이 시작했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란 주위의 만류에도 12년 동안 포기하지 않고 소송을 이어가 지자체장의 혈세 낭비에 경종을 울린 주민 소송단 오이천 씨(65)와 박순애 씨(70)를 19일 에버라인 기흥역 인근 카페에서 만났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대법원 판결 후 “시민의 힘으로 공공의 책임을 바로잡을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라고 성명을 발표했다.》

1990년대 논의가 시작된 용인 경전철 사업은 2001년 한국교통연구원에서 완공 시 매일 16만1000명이 이용할 것이란 수요 예측 결과를 내놓으며 논의가 급진전됐다. 하지만 2010년 6월 완공되고도 캐나다 봄바디어 컨소시엄과 용인시가 수입 배분을 둘러싼 이견을 보이면서 3년 동안 운행을 못 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설상가상으로 국제중재재판에서 패소해 용인시가 시행사에 이자를 포함해 8500억 원을 물어주게 됐다.

오 씨는 “1991년 용인으로 이사 온 뒤 난개발을 눈으로 확인하고 시민운동을 하게 됐다”며 “특히 경전철은 지역 특성에 대한 고려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노선을 잘못 짰다는 지적이었다. 용인 북부에 있는 수지구 주민들은 더 북쪽인 서울로 출퇴근하고, 서부에 있는 기흥구 주민들은 더 서쪽인 수원으로 출퇴근하는데 엉뚱하게 기흥과 동쪽 구도심을 잇는 노선이 잡혔다는 것이다.

천문학적 금액을 물어준 용인시는 ‘전국 채무 1위’가 되며 파산설이 나올 정도로 재정이 악화됐다. 박 씨는 “노후 학교 시설을 고칠 예산이 없을 정도로 시에 돈이 없었다”고 했다. 용인시는 공동묘지를 매각하는 등 돈이 될 만한 것은 뭐든 팔았다. 도로 확장, 공원 건설, 공공시설 증축 등이 줄줄이 미뤄지며 주민 삶의 질에도 타격을 줬다.

주민 소송 아이디어는 용인 시민단체들이 대책을 토론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이들 두 사람을 포함해 총 12명이 소송단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승소 가능성을 두고선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였다. 이 전 시장은 2002∼2006년 재임 시절 “소모적 논쟁거리를 만들고 있다”는 성명을 발표할 정도로 경전철 반대 운동에 적대적이었다. 주민 중에서도 “대안이 있느냐”, “이길 수 있겠느냐”는 목소리가 나왔다. 박 씨는 “이길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하지만 엉터리 수요 예측에 기반해 방만하게 사업해 놓고, 아무도 책임을 안 지는 게 너무 화가 났다”고 소송 참여 이유를 밝혔다. 마침 무료 변론을 맡아 줄 변호사가 나타나 주민들이 부담한 비용은 인지대 등 수백만 원에 그쳤다.

하지만 4년 동안 진행된 1, 2심 재판에선 주민들이 졌다. 법적으로 주민소송은 주민감사를 청구한 후에만 제기할 수 있는데 주민들이 청구한 소송과 감사의 내용이 다르다는 이유에서였다. 2심 패소 후 “대법원에서도 지면 상대방 소송 비용까지 물어줘야 하고 자칫 손해배상청구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오 씨는 “만약 3심서도 패소해 돈을 물어내게 되면 동등하게 나눠 내기로 뜻을 모았다”고 돌이켰다. 재판이 열릴 때마다 자비를 들여 수원지방법원과 서울고등법원으로 피켓 시위를 다녔던 오 씨와 박 씨는 서울 서초동 대법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2020년 대법원에서 반전이 일어났다. 재판부가 “주민소송은 감사 청구와 관련 있는 것이면 충분하다”며 사건을 파기한 뒤 2심으로 돌려보냈다. 이후 소송을 거쳐 이달 16일 주민 승소가 최종 확정된 것이다. 대법원은 “현 용인시장이 이 전 시장과 교통연구원을 상대로 214억6800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라”고 판결했다.

이 전 시장은 재판과 별개로 진행된 수사에서 경전철 시공업체에 압력을 넣어 측근이 운영하는 회사에 하도급을 주게 하고 미화 1만 달러를 받은 사실도 드러났다. 오 씨는 “기획재정부에서 ‘승객이 수요 예측의 90%를 밑돌 땐 30년 동안 차익을 보전한다’는 계약 조항에 문제를 제기했다. 보전액이 너무 크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전 시장은 계약을 밀어붙였다”고 했다. 박 씨는 “지금도 매년 300억, 400억 원씩 보전해 주고 있다. 이 전 시장을 포함해 역대 용인 시장 7명 중 6명이 비리 혐의로 구속되거나 재판을 받았다. 뭔가 잘못 돌아갔다는 뜻 아니겠느냐”고 물었다.

경전철 계약 및 추진 과정에서 시의회의 견제 기능도 작동하지 않았다. 용인시는 시의회에 자료를 공개하지 않았고, 시의원 21명 중 18명은 봄바디어 측의 지원을 받아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박 씨는 “시의원들이 예산 감시만 철저하게 했다면 경전철 문제가 이렇게 심각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통연구원 역시 연구원들이 봄바디어 측으로부터 해외 견학을 지원받고 명절마다 선물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사업 시작 때 교통연구원은 200명이 탈 수 있는 객차 1량만 가동해도 하루 승객이 16만 명에 이를 것이란 분석을 내놨다. 오 씨는 “전체 노선에 10대가 동시에 움직여도 특정 시점의 최대 승객은 2000명뿐이다. 16만 명이 이용하려면 낮에도 계속 만원 열차로 다녀야 하는데 그게 가능한 일이냐”고 반문했다. 국책 연구기관에서 왜 이런 전망치를 내놓았는지 알 수 없다고 오 씨는 말했다. 교통연구원은 재판 과정에서 ‘정상적인 절차에 따라 분석을 진행했다’는 식의 입장만 밝혔다.

교통연구원 분석 당시 50만 명에 못 미쳤던 용인 인구는 100만 명이 넘었다. 하지만 개통 직후 9000명이던 하루 이용객은 지금도 하루 4만 명이 약간 넘는 수준이다. 여전히 교통연구원 예상치의 30%에 못 미친다. 오 씨는 “교통연구원에서 비합리적인 분석 결과를 내놓는 데 모종의 외압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이 들지만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선 밝혀지지 않았다”고 했다.

12년 동안 재판이 진행되면서 주민소송단은 7명으로 줄었다. 오 씨는 “일부는 이사를 갔고, 시의회 등 공직에 진출한 사람도 있었다”며 “하지만 남은 사람들끼리 끝까지 포기하지 말자고 서로 격려했다”고 말했다.

용인 경전철은 외환위기 이후 재정이 충분치 않은 정부와 지자체가 우후죽순 민자투자 사업을 추진하던 상황에서 진행됐다. 오 씨는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특성상 적자가 나기 쉬운데 국가나 지자체가 적자는 물론이고 투자자 이윤까지 보전해 주는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특히 도로 위에 고가를 만들어 그 위를 달리는 경전철은 아파트 조망권 문제 등이 있어 더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용인 경전철 재판이 이슈가 되면서 다른 지역에서 주민 소송을 하고 싶다며 소송단에게 문의하기도 했다. 오 씨는 “최근은 민자 사업을 하더라도 운영사가 수익을 내는 방법을 찾아야지 적자 보전은 못 해 준다는 게 지자체들의 입장”이라며 “이번 판결로 지자체장들도 보여줄 성과를 내기 위해 무리한 사업을 추진할 경우 반드시 개인이 책임을 진다는 생각을 가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재판에서 이겼지만 오 씨와 박 씨에게 돌아오는 금전적 혜택은 없다. 용인시가 이번 대법원 판결을 근거로 앞으로 소송을 내서 이 전 시장과 교통연구원이 손해를 배상하더라도 전액 시에 귀속될 뿐이다. 오 씨는 “주변에서 ‘재판에서 이겼으니 얼마 받느냐’고 물어올 때마다 쓴웃음이 나온다”며 “소송 비용을 돌려받는 것도 역시 주민이 낸 용인시 재정에서 나오는 것 아니냐. 큰 액수는 아니지만, 보전받지 않기로 했다”고 했다.

박 씨는 “이상일 현 용인시장이 판결 내용대로 하루빨리 이 전 시장과 교통연구원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해야 한다. 제대로 진행하는지 끝까지 감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가 남는다. 이 전 시장 개인이 214억 원이란 막대한 피해액의 일부를 국가에 내놓을 여력이 있는 걸까. 이 전 시장은 2005년 공직자 재산 등록 때 신고한 재산은 31억 원 규모지만, 20년 전의 일이다. 오 씨는 “중요한 판례를 만들었다는 것에 만족하고 보람을 느낀다”며 “앞으로 교통연구원 등 연구용역 수행 기관에 외압이나 무리한 요구가 가해졌을 때 ‘우리가 거덜 난다’며 거절할 수 있는 분위기가 생기면 좋겠다. 그러면 지자체의 무리한 사업 추진도 줄어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이천(65)
△1960년 충북 증평 출생
△1988∼2008년 서울농수산식품공사 근무
△2010∼2022년 용인미래포럼 환경분과위원장
△2008∼2015년 한경국립대 겸임교수
△현재 ㈜행복한조경 대표

박순애(70)
△1955년 전북 정읍 출생
△1981∼1982년 원풍모방노조 부조합장
△2006∼2008년 용인참여자치시민연대 활동
△2012∼2015년 용인시주민참여예산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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