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소낙비 피했지만 임전태세… 반도체 관세 EU 수준일 것”[데스크가 만난 사람]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8월 7일 2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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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트럼프 “딜 됐다” 순간까지 확신 못 해… 관세-비관세 불씨 여전 안심할 상황 아냐
3500억 대미투자, 펀드보다 금융패키지… 미국도 처음이라 세부안 불분명
범부처 TF에서 정교하게 협의 예정… 트럼프 반도체 100% 발표, 세부안 봐야
삼성-SK 美에 공장… 韓 불리 없을 것

6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 사무실에서 만난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한미 관세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됐지만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라고 강조하며 반도체, 자동차, 의약품 등 미국의 전략적 품목관세 부과 기조는 지속될 것이라고 시사했다. 다만 반도체와 관련해 “한국이 다른 국가 대비 불리하지 않은 대우를 받기로 약속했다”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이 100% 관세 대상이 되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6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 사무실에서 만난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한미 관세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됐지만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라고 강조하며 반도체, 자동차, 의약품 등 미국의 전략적 품목관세 부과 기조는 지속될 것이라고 시사했다. 다만 반도체와 관련해 “한국이 다른 국가 대비 불리하지 않은 대우를 받기로 약속했다”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이 100% 관세 대상이 되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이제 소낙비 피한 겁니다. 정부는 다시 ‘임전태세’ 중입니다.” 한미 관세 협상 타결 일주일이 지난 6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만난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안심하고 있을 수 없다”고 여러 차례 강조하며 정부는 다시 전투에 임하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고 했다. 당장 한미 간 이견이 노출된 3500억 달러 대미 투자에 대한 구체적인 운영 방안에 대해 미국과 세부 협의를 해 나가야 한다. 여 본부장은 “(투자펀드 운용과 관련해)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금융위원회 등 관계 부처가 모여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려 하고 있다”고 했다. 농산물 검역 절차와 관련해서도 “미국이 (한국 검역 절차에) 불신이 있는 게 사실이라 투명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 본부장은 무엇보다 “국내 산업 경쟁력, 수출과 투자 모델을 근본적으로 다시 보면서 완전히 변화된 글로벌 통상 환경에 새롭게 적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 정부 들어 6월 말부터 가장 먼저 미국 측과 접촉했는데, 미국 측 분위기는 어땠나.

“정치적 상황 때문에 늦어서 압박감이 컸다. 처음부터 미국 측 요구가 많았고, 우리는 우리가 대응할 부분, 방어할 부분 등을 설득했다. 협상은 뒤로 갈수록 가속화되는 경향이 있는데, 우리도 (지난달 22일) 일본 협상이 타결되면서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타결 전까지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트럼프 1기 당시만 해도 미국무역대표부(USTR)와 통상교섭본부가 서로 협상하면 딜이 만들어졌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USTR 당시 대표만 넘으면 됐다. 이번에는 미국의 (협상) 전선이 USTR 대표, 상무장관, 재무장관으로 넓혀져 있었다. 협상 시스템이 굉장히 불확실하고 전방위로 분절화돼 있는 점이 어려웠다.”

―그 불확실성은 어떻게 타개했나.

“대통령실이 컨트롤타워가 돼 경제부총리, 산업부 장관, 저까지 총력전을 벌였다. 거기에 민간의 정재계 네트워크도 활용됐다. 일본 협상이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주도로 이뤄졌고, 러트닉 장관이 ‘딜 메이커’로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상황이었다. 그때부터는 러트닉 장관과 뉴욕 사저에서 영국 스코틀랜드 출장지에서까지 만났다. 물론 제이미슨 그리어 USTR 대표도 발언권이 상당했기 때문에 계속 접촉했다. 한 사람만 한다고 되는 구조는 아니었다.”

―재계 총수들은 어떤 역할을 했나.

“한국 기업이 투자한 지역이 주로 공화당 우세 지역이다. 공화당 의원, 주지사, 트럼프 대통령과 연이 있는 월스트리트 투자가 등 재계 인맥을 활용해 도움을 많이 받았다.”

―협상이 타결될 것 같다는 느낌은 언제 받았나.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서 ‘딜이 됐다’고 악수하는 순간까지 50 대 50이라고 생각했다. 스코틀랜드에서 돌아오면서부터는 약간 가시권에 들어갔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변수가 많았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협상도 결국 사람이 만나서 하는 거라 만남을 지속하면서 보이지 않는 신뢰가 쌓이는 측면이 있다.”

―3500억 달러 대미 투자 펀드에 한국과 미국의 이견이 크다. 미국은 이익의 90%를 가져간다고 하고 있다.

“1500억 달러는 조선 특화(마스가) 펀드이고, 2000억 달러는 경제안보 측면에서 전략적인 부분에 투자하는 것이다. 조선 특화 펀드는 다른 나라와 비교해 (차별화되는) 성과였다. 2000억 달러 투자는 미국도 처음 시도하는 아이디어라 구체적인 운영 방식이 아직 불명확한 부분이 있다. 앞으로 협의하며 실제로 운영하는 과정에서 구체화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 정부는 미국의 주장이 ‘투자로부터 이익의 90%를 리테인(Retain·보유)한다’는 의미로 ‘재투자’ 개념이라고 하는데, 실제 협상에서 리테인이란 말이 나왔나.

“리테인이란 단어는 미일 협상 팩트시트(Factsheet·보도참고자료)에서 나온 용어다. 그런 부분도 앞으로 협의를 통해 구체화해야 한다. 이익 배분과 관련한 얘기도 (우리 협상에서) 나왔었는데 이것은 계속 합의를 하자는 그런 차원에서 나온 말이었다. (구체적 협의를 위해) 범부처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는 단계다. 기재부, 금융위, 산업부 등 관계 부처가 참여할 것이다.”

―범부처 TF는 펀드 운영에 중점을 둘 것인가.

“펀드라고 하니까 ‘펀드 1호’ 이런 식으로 돈을 모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개념이 아니다. 우리가 (2000억 달러라는) 한도를 정한 ‘금융 패키지’라고 표현하는 게 사실 더 정확하다. 프로젝트 수요가 있을 때 캐피털 콜(Capital Call·출자 요청) 방식으로 하는 것이다. 관련된 부처들이 모여서 정교하게 만들어 가야 한다. 미국 경제가 세계에서 가장 호황인데, 앞으로 제조업을 재건하면서 우리 기업들에는 위기가 아닌 기회가 될 수 있다.”

―왜 아직 한미 협의 팩트시트는 안 나오나. 일본과 유럽연합(EU)은 타결 다음 날 나왔다.

“과거에는 양국 간에 협의해서 팩트시트를 냈는데, 요즘은 백악관이 일방적으로 낸다. 그래서 많은 국가가 협상 끝나고 나서도 서로 이해가 다른 부분이 있는 것이다. 혹시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지금도 우리는 실무적으로 소통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사실 이런 무역 협상을 정치적 측면에서 홍보하고 있고, 미국 내 유권자 대상 메시지 측면도 크다고 본다.”

―미국의 비관세 장벽 압박 불씨는 살아 있다는 지적이 많다.

“그렇다. 협상 끝나고 공항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우리가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이번에 소낙비를 피했지만 트럼프 행정부 남은 기간 동안에 어떤 형태로든 관세라는 툴을 계속 사용할 것이다. 비관세에서도 계속 이슈가 제기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우리는 바로 임전 태세를 다시 하고 있다.”

―우리 정부에 미국 농산물 검역 전담 직원이 지정됐다. 미국산 농산물 수입이 빨라지는 것 아닌가.

“검역은 하루이틀 나온 이슈가 아니다. 미국이 (한국 검역 절차에) 어느 정도 불신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불신과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소통을 강화하고 투명성을 제고하겠다는 의미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하면서 관세로는 (일부 농산물) 개방한다고 했는데, 농산물은 개방해도 검역 (수입위험분석) 8단계를 통과해야 우리 소비자에게 수입된다. 우리는 이 8단계에서 계속 시간이 걸렸던 것이다.”

―그럼 연내 미국산 과일이 한국에 들어올 가능성이 있나.

“시간이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 국민의 건강과 안전이 관련된 여러 과학적인 분석을 거쳐야 한다. 그런 절차를 투명하고 과학적으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동차 품목관세에서 한미 FTA 효과가 사라졌는데, 다시 낮춰질 가능성은 없나.

“미국이 (품목)관세를 물리겠다고 한 자동차, 반도체, 바이오 등은 안보적으로 정치적으로 민감한 품목이다. 다만 장난감, 의류 이런 품목은 모두 관세 부과 시 인플레이션 우려가 있어 나중에 미국이 선택적으로 관세를 부과하지 않을까 싶다.

사실 한미 FTA가 죽었다고 하는데 아직 살아 있고 그나마 상대적으로 이익이 되는 측면이 있다. 철강, 자동차, 반도체 등 무역확장법 232조 근거로 부과되는 관세는 예외지만 한류 상품 등 일반 소비재는 해당이 된다. 우리는 0%에서 시작해서 관세가 15%가 되지만 다른 국가는 기존 관세에서 상호관세가 추가되는 것이다.”

―쌀과 소고기는 미국 압박이 심한 분야 아니었나.

“그렇다. 일본 사례에서 볼 수 있고, 또 소고기는 우리나라와 러시아, 벨라루스 등 3개국만 규제하다 보니까. 결과적으로 이번 협상에서 이 두 가지 품목은 우리가 정말 굉장히 민감한 부분이라고 적극적으로 설득해 트럼프 대통령도 이해를 했다. 광화문에 100만 인파가 모인 광우병 시위 사진이 효력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또 언론에서 이번에 소고기가 거론된 후 농축산계 반응 등을 보고 미국에서도 민감도를 파악했을 것이다.”

―민간 품목 지키느라 반대 급부로 투자액이 늘어났다는 지적도 있다.

“그렇게 보진 않는다. 시장 개방 이슈는 계속 논의돼 왔던 부분이고, 투자는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따라 우리 기업이 미국에 진출해서 기회로 만들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전체적으로 하다 보니까 패키지가 되면서 균형점이 맞춰진 것이다.”

―대미 투자가 커지면 국내 투자 여력이 줄어들 수 있는데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이제는 정말 국내 산업 경쟁력, 수출과 투자 모델을 근본적으로 다시 보면서 완전히 변화된 대미 통상, 글로벌 통상 환경에 새롭게 적응해야 할 것 같다. 미국과 중국이 우리 양대 수출국이고 3위가 아세안이다. 아세안과 인도를 합하면 거의 1, 2위와 맞먹는 수준이라 이 같은 신남방 지역이 우리의 주요한 성장 동력을 제공할 수 있다고 본다.”

인터뷰를 마친 후 한국 시간으로 7일 새벽, 트럼프 대통령은 “반도체에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한국 반도체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추가로 묻자 여 본부장은 “한국은 반도체 관세 부과 시 여타국 대비 불리하지 않은 대우를 받기로 미국 측과 이미 합의했고, 이는 미 상무장관도 소셜미디어를 통해 확인한 바 있다”며 “반도체 관세가 부과된다면 한국은 미국과 EU가 합의한 15% 수준일 것”이라고 답해 왔다. 삼성전자는 텍사스주에, SK하이닉스는 인디애나주에 공장을 짓고 있고, 미국과의 최혜국 대우 합의로 100% 관세 부과를 피할 것이란 의미다.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
△1966년 서울 출생
△1992년 서울대 경영학과
△1992년 행정고시 36회
△2004년 미국 하버드대 경영학 석사
△2010년 세계은행(IFC) 선임투자정책관
△2016년 산업통상자원부 자유무역협정정책관
△2019년 산업부 통상교섭실장
△2020년 대통령비서실 신남방·신북방비서관
△2021년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
△2023년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위원
△2025년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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