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인간의 가장 큰 특징을 묻는다면 초등학생도 뇌를 떠올린다. 신체에 비해 크고 성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류가 어떻게 이런 뇌를 가지게 됐는지는 의외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특히 이 놀라운 뇌를 거의 우연에 가깝게 얻게 됐다는 사실은 더 생소하다.
인류 역사 약 600만 년 가운데 200만 년 전까지는 진화 속도가 더뎠다. 그러다 도구 사용과 불의 발견을 계기로 급격한 진화가 시작됐다. 불을 쓰면 같은 음식에서 훨씬 많은 영양분을 얻을 수 있다. 곡물 탄수화물의 소화율은 12%에서 35%로, 고기 단백질은 45%에서 78%로 높아진다. 삶으면 뼛속 영양분까지 알뜰하게 우려낼 수 있다. 완전히 새로운 에너지 확보 방식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불은 독성을 줄이거나 없애 준다. 불을 이용해 여느 동물이 먹지 못하는 고사리나 생으로는 먹기 어려운 도토리까지 섭취할 수 있게 됐다. 살균 효과 덕분에 질병에 덜 걸리고, 추위에 강해져 서식지 확장도 가능해졌다. 최근 이스라엘 연구팀은 인류가 약 180만 년 전부터 연기와 열을 이용해 고기를 말리는 훈제 저장을 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저장 기술은 위기 대처 능력을 크게 높였다.
덕분에 인류는 말 그대로 ‘오만 가지’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존재가 됐다. 한 연구에 따르면 인간이 섭취할 수 있는 음식은 실제로 약 3만 종에 이른다. 자연계에서 손꼽히는 최고의 잡식 능력자가 된 셈이다. 그러나 불의 선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익히거나 구워 먹으면 음식은 훨씬 잘 소화된다. 열을 가하면 음식 속의 단단한 세포벽이 무너지면서 많이 씹지 않아도 영양분을 쉽게 흡수할 수 있다. 유인원은 여전히 하루 8시간을 먹는 데 쓰지만, 인류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남는 시간은 더 멀리 이동하고, 더 많은 일을 하는 데 활용됐다. 큰 이빨과 긴 창자도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중요한 변화는 작은 이빨만으로도 저작이 충분해지면서 턱이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턱이 작아지자 뇌가 커질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됐다. 이 덕분에 인간은 단순한 소리 내기를 넘어 언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됐다. 불을 다루는 능력이 예기치 못한 결과를 낳은 것이다.
에너지는 생명사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다. 더 나은 에너지를 확보하거나 차원이 다른 효율을 만들어낸 종이 언제나 승자가 됐다. 인류사의 분기점이 된 농경과 산업혁명도, 이후의 역사도 결국 에너지 확보와 효율이 번영을 가르는 핵심 조건이었다. 오늘날 전 세계가 인공지능(AI)에 관심을 집중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인간은 큰 뇌를 바탕으로 정신세계를 발전시켰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능력을 에너지화한 것이다. 이는 인간만이 가진 능력이다. 세상이 크게 변할 때마다, 잘나가던 사람들은 어떤 에너지를 어떻게 사용해 성장했는지가 드러난다. 인류는 불로 번영했지만, 불은 모든 것을 태워 버리기도 했다. 불이 뇌를 만들었듯, 뇌 역시 모든 것을 망가뜨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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