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아파트만 한 애증의 대상이 있을까. 어느 지역 몇 평대의 아파트는 삶의 공간이란 의미를 넘어 그 사람의 지위를 드러내는 지표처럼 여겨질 정도다. 어느새 집이 상품이 된 우리네 현실에서 아파트는 선망과 좌절이 교차하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강풀 원작의 ‘아파트’나 아파트 층간소음 문제를 다룬 ‘노이즈’, ‘백수아파트’ 같은 작품들이 적지 않다. ‘84제곱미터’도 그 계보를 잇는 작품이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로 아파트를 샀지만 집값은 떨어지고 이자 부담은 갈수록 늘어가는 우성(강하늘)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알 수 없는 층간소음에 미칠 지경이 돼간다. 억울하게도 자신이 그 소음의 주범으로 몰리자, 그는 참지 못하고 범인 찾기에 나서고 결국 충격적인 사건의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그런데 범인을 찾다 만난 최고층 펜트하우스에 사는 입주민 대표 은화(염혜란)가 하는 말이 흥미롭다. “아파트가 무슨 죄야? 결국 사람이 문제지.” 그 말 속에는 층간소음 같은 부실 아파트의 고통보다 이를 감내해 집값을 유지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뜻이 들어 있다. 곧 GTX만 들어오면 모든 게 나아질 거라는 그녀의 말에 우성의 감정도 누그러진다. 사는 문제보다 집값이 우선이 된 현실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프랑스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는 일찍이 ‘아파트 공화국’이란 저서를 통해 ‘주택이 유행상품처럼 취급되는’ 한국의 현실을 꼬집은 바 있다. 그는 195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서울의 도시정책과 아파트 개발사를 분석한 후, 대단지 아파트들이 ‘서울을 오래 지속될 수 없는 하루살이 도시’로 만들고 있다는 말로 끝을 맺는다. 살(buy) 것인가, 살(Live) 것인가. 집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봐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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