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가끔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요즘 어떤 책을 읽고 있는지 물어본다. 책을 읽는 학생은 극히 일부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공대 학생이라도 책을 가까이 해야 한다. 대학생이 지적 기반을 넓히는 데 독서만큼 확실한 도구는 없다.
꼰대 느낌이 나는 얘기지만, 내가 대학을 다닐 때 도서관은 교정의 보물섬이었다. 도서관 입구에 진열된 신간을 훑어보는 것은 세상의 변화를 읽는 일이었다. 솔솔 바람이 부는 구석진 창가 옆에 앉아 책을 읽던 시간은 다시 돌아가고픈 청춘의 시간이다. 시험 기간이 다가오면 책 읽기가 더 재미있어져 시험을 망치곤 했던 기억도 난다. 다른 것을 다 떠나,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이제 세상이 바뀌어 사람들에게 책보다는 각종 소셜미디어와 유튜브가 더 친숙한 매체가 됐지만 활자와 종이가 만들어 내는 우주와 같은 공간은 여전히 멋스러움과 힘을 지니고 있다.
서울 마포중앙도서관의 제안으로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책 ‘코스모스’를 읽고 함께 토론하는 프로그램에 멘토로 참여하고 있다. 독서 모임의 이름은 ‘별보다 큰 질문을 던지는 시간’이다. 이 모임을 만든 사서가 지었는데, 정말 멋진 이름이지 않은가? 별보다 큰 상상을 하고 더 큰 질문을 던져보고 그 의문점을 탐험하는 시간이다. 오후 7시에 시작하고, 2주에 한 번씩 네 번에 걸쳐 이뤄진다. 멘토가 책 내용을 설명해 주는 방식이 아니라 수강생 24명이 모두 책을 읽고 난 뒤 궁금증이나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수업을 이끌어 가는 나로서는 어려운 천문학에 대해 자유롭게 접근하는 과정이 흥미롭다.
천문학은 매력적인 학문이다. 물리학의 법칙과 개념을 통해 우주 현상을 설명한다. 천문학에서 거대한 우주를 설명하는 기본 법칙으로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이 있다. 태양을 중심으로 한 행성의 운동을 수학적으로 설명한다. 이 법칙을 통해 태양계 천체의 궤도와 주기가 밝혀졌다.
19세기 이후 천문학에서 천체물리학으로의 발전이 이뤄졌다. 과학자들은 행성과 위성의 위치를 측정하는 것에서 벗어나 천체의 화학적, 생물학적 구성이나 대기 상태 등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우주론이 융합되면서 중력 렌즈, 블랙홀, 팽창 우주, 암흑물질, 암흑에너지 등 새 연구 주제들이 현대 천문학에 등장했다. 양자역학과 핵물리학은 별 내부의 핵융합, 중성자별의 형성 같은 과정을 이해하는 데 사용된다.
코스모스는 700페이지가 넘는 책이다. 어려운 과학 얘기를 읽다 보면 어두운 우주에서 멋진 별을 발견하는 것처럼 가슴을 적시는 감동적인 문장을 만나게 된다. 이 책의 매력은 광활한 우주에 존재하는 나를 발견한다는 것에 있다. ‘나’라는 존재는 우주의 티끌 같은 한 점에 불과하지만 그럼에도 가장 중요한 존재라는 앎에 가닿게 만든다.
곧 대선이다. 다음 대통령은 작은 도서관의 소우주 같은 이런 귀중한 독서 모임의 예산을 줄이거나 하는 일은 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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