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형 미국 스탠퍼드대 생명공학과 교수《영화 ‘아이언맨3’의 주인공 토니 스타크. 스타크는 슈퍼 히어로 캐릭터이지만 트라우마로 인한 공황장애를 앓는 모습이 여러 장면에서 그려진다. 그가 식당에서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던 때였다. 그를 알아본 어린이들이 그에게 사인을 요청해 왔고 그는 성심성의껏 대해준다. 동시에 그는 동료로부터 트라우마와 관련된 이야기를 듣는다. 얼마 안 돼 그는 갑자기 호흡곤란 증세를 보이며 괴로워한다.》
끝내 스타크가 달려간 곳은 아이언맨 슈트 안. 그는 슈트에 자신의 심장과 뇌의 상태를 체크해 달라고 한다. 아이언맨 슈트는 그에게 말한다. “심장과 뇌에서는 특별한 이상 신호가 발견되지 않습니다.” 스타크는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내가 독극물에 노출된 것이냐”라고 반문한다. 슈트는 답한다. “내 생각엔 당신이 심각한 공황발작을 일으킨 것 같습니다.” 이어진 장면에서 스타크는 당황한 모습을 역력히 보인다.
일반인들이 공황장애를 떠올릴 때 통상 떠올리는 직군이 있다. 바로 대중의 사랑을 많이 받는 연예인이다. 몇몇 연예인은 방송 등을 통해 불시에 호흡곤란 등의 증상을 겪는다거나, 불안으로 비행기를 타지 못한다며 공황장애를 앓고 있음을 고백했다. 그들의 고백에 대중은 안타까운 시선을 건네면서도 ‘나와는 거리가 먼 질환’쯤으로 여긴다. 하지만 공황장애는 전 세계 인구의 4% 정도가 겪는 매우 흔한 질병이다.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2배가량 더 흔히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황장애의 증상은 크게 감정적 증상과 신체적 증상으로 나뉜다. 감정적 증상으로는 지나친 걱정과 두려움, 불안, 집중력 저하, 짜증스러움, 걱정을 통제하기 어려움, 회피 행동 등이 있다. 신체적 증상은 공황발작, 심장박동 수 증가, 빠른 호흡, 발한, 떨림, 근육 긴장, 피로, 구역이나 복통, 설사, 어지럼증, 수면의 어려움, 두통, 숨 가쁨, 지속적인 흉부 통증, 질식되는 느낌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공황장애 진단은 전반적인 건강 상태를 점검하는 신체검사와 함께 현재 복용하고 있는 약물의 부작용 유무를 파악하고, 혈액검사를 통해 갑상샘(갑상선) 기능 저하에 의한 증상은 아닌지 확인하는 방법 등을 통해 내려진다. 의료진은 먼저 환자의 다른 질환 가능성을 살핀다. 증상의 원인이 되는 다른 질환이 없다면 의료진은 심리평가를 통해 진단과 치료 방법 등을 결정한다.
치료는 주로 인지행동 치료와 항우울제, 항불안성 약물 치료로 이뤄진다. 연구에 따르면 공황장애는 치료 이후에도 환자의 33∼60% 정도에서 재발 증상이 나타난다. 6년간 추적 관찰한 연구에서 상태가 호전된 환자는 52.4%에 불과했다.
공황장애는 스트레스와 같은 심리적 요인에 의해서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공황장애 환자들은 ‘스스로 조절하면 괜찮은 병’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내가 멘털이 약해서 공황장애가 나타난 건 아닐까’ 자책하는 환자도 많다. 하지만 실제 공황장애 환자의 뇌를 촬영한 많은 연구 결과를 살펴보면 정상인 대비 뇌의 기능적 차이가 나타났다.
신체적 증상들이 감정적 증상들에 의해 생긴다고 해도 감정적 변화 또한 뇌가 관장하는 일이다. 이에 공황장애는 근본적으로 뇌 질환이다. 공황장애를 치료하려면 정확한 뇌 기능의 이상을 알아봐야 한다. 증상에 대한 주관적인 판단이 아닌 객관적인 뇌 기능의 변화를 정량적으로 잴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뇌 촬영을 통해 알아낸 뇌 기능의 변화는 치료가 아닌 연구에만 활용됐다. 많은 연구 결과가 공황장애 환자의 뇌 기능이 통계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보여줬지만 개인적인 차이를 정확히 보여주지는 못했기 때문일 것으로 추측된다.
다시 영화 ‘아이언맨3’로 돌아가 보자. 스타크가 슈트에 뇌와 심장 기능의 이상 여부를 물었을 때 슈트는 이상이 없다며 공황발작 같다고 말한다. 신체적으로는 문제가 없는데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생긴 증상이라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그러나 공황장애로 인한 정신적, 신체적 증상의 발현은 상당 부분 뇌의 기능 이상으로 생겼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보는 만큼만 이해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보이지 않는 원인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착각하기 쉽다. 예를 들어 현미경이 없던 시대에는 바이러스로 인한 질병이 원인 미상으로 분류됐다. 마찬가지로 뇌의 기능 역시 눈으로 파악하기 쉽지 않다. 이에 공황장애 역시 뇌 기능의 문제와 상관없이 생겨난 질환이라고 착각할 가능성이 높다.
기술은 오늘날 눈부신 발전을 이뤘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보이게 한다. 뇌의 기능 변화를 직접 눈으로 보고 정확한 원인을 파악한 후에 이상 기능을 정상화할 수 있는 시대가 우리에게 성큼 다가오고 있다. 지금까지 치료가 힘들었던 많은 질환을 치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다가오는 시대의 아이언맨 슈트는 스타크의 질문에 아마 이렇게 답할 것이다. “뇌의 이상 신호 발생으로 인한 공황발작입니다. 뇌의 신호를 정상화하는 치료를 수행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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