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최대 방산기업’ 탈레스의 파트리스 켄 회장
美 거리 두기에 안보 현실 재인식… 유럽, 재무장 서두르지만 시간 걸려
유럽, ‘사이버 방어’ 수요 늘어… 韓방산의 빠른 납품 속도 지향해야
방위 분야 꾸준한 R&D가 저력… AI 무기, 안전 요구사항 엄격히 해야
파트리스 켄 탈레스그룹 회장은 26일(현지 시간) 동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러시아와 밀착 중인 미국이 유럽과 거리를 두는 데 대해 “유럽에 경종이 울리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유럽 국가들의 자강 움직임을 환영하면서도 “유럽이 재무장되기까진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봤다. 탈레스그룹 제공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올해 1월 취임한 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다져진 미국과 유럽의 ‘대서양 동맹’이 흔들리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이 러시아와 급속도로 밀착하고, 유럽과는 거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전 협상에선 유럽이 사실상 배제된 모양새다. 당연히 유럽 국가들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이제 유럽 국가들 사이에선 ‘미국 없는 안보’를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영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러시아 침공에 대비할 평화유지군 신설까지 논의되고 있다. 각국은 국방비를 대폭 증액하며 군비 증강에 속도를 낸다. 유럽의 대표적 핵보유국인 프랑스의 핵 억지력을 다른 유럽 국가들과 공유해야 한다는 ‘핵우산론’이 지지를 받고 있다.》
급박해진 유럽의 자강(自强) 경쟁 속에 유럽연합(EU) 1위 방위산업체 탈레스그룹의 파트리스 켄 회장(55) 겸 최고경영자(CEO)를 26일(현지 시간)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세계 68개국에 진출한 글로벌 방산 기업 탈레스는 이탈리아 레오나르도, 독일 라인메탈과 함께 대표적인 방산 기업으로 꼽힌다. 러시아로부터 우크라이나 영공을 보호하는 ‘그라운드마스터(GM) 200’ 레이더, 한국 영해를 보호하는 기뢰(해상지뢰) 무력화 시스템 등을 지원한다. 켄 회장은 프랑스 정부와 민간을 넘나들며 방위 분야 전문성을 쌓은 11년 차 CEO다.
―최근 유럽에서 방위산업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고 있다.
“유럽에서 국방비 지출은 최근 크게 증가하고 있다. 이런 변화는 현재 일어나고 있는 불행한 분쟁과 전반적인 지정학적 불안정성 때문에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유럽에서 방위산업은 이제 국가 주권을 확보하고 전쟁 발발을 막는 필수 요소로 인식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유럽이 완전한 방어력을 갖추려면 10년이 걸린다는 관측도 있다.
“유럽 국가들이 국방에 더 많은 투자를 하겠다고 발표하고 있다. 이는 자체 역량을 키운다는 점에서 고무적인 일이지만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우선 유럽 국가들은 재정 적자 문제를 해결하고, 제대로 예산을 확보해 군수 주문에 투입해야 한다. 그런데 이는 (재정 적자가 심한) 대부분 국가에 쉽지 않은 일이다. 각국 국방부를 살펴보면 (국방비가 집행되는) 메커니즘 자체가 복잡해 계약에 긴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또 기업들이 생산량을 늘리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일부 국가들은 군수 공급망을 중소기업에 많이 의존한다. 이들이 빨리 성장하도록 도와야 한다.”
―유럽에서 ‘미국 없는 안보’에 대비하자는 목소리가 커졌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유럽 군대 간의 ‘상호운용성(interoperability)’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전장에서 (군 시설이) 호환될 수 있게 상호운용성을 향상시켜야 한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탈레스는 EU가 자금을 지원하는 ‘EISNET’란 컨소시엄을 이끌고 있다. 각국 방공 시스템이 서로 잘 호환되도록 ‘개방형 표준’을 마련하려는 취지다. 무인기(드론)부터 극초음속 미사일까지 다양한 위협으로부터 EU 회원국을 보호하려면 개방형 표준이 중요하다.”
―미국이 안보 지원을 줄이면 유럽에 큰 위협이 될까.
“지정학적 상황에 대해 언급하긴 힘들다. 다만 유럽인들은 현실을 재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유럽에 ‘경종(wake-up call)’이 울리고 있는 걸 목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유럽 국가들은 얼마나 적극적으로 무기를 도입하고 있나.
“작년에 탈레스는 6년째 ‘1억 유로(약 1593억 원) 이상인 계약’ 27건을 포함해 147억2300만 유로(약 23조4605억 원) 규모의 방위 분야 수주를 달성했다. 이는 기록적인 실적이었다. 유럽에서만 수주가 는 것이 아니다. 아시아, 중동 등에서도 수요가 수년 전부터 증가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분야에서 수요가 많이 느나.
“유럽에선 전자전(戰), 방공 시스템, 탄약에 대한 수요가 상당히 늘고 있다. 일부 국가에선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를 지원한 뒤 남은 재고를 보충해야 한다. 예컨대 영국은 (우크라이나에 미사일을 많이 지원해) 미사일이 많이 필요하다.”
―방산 기업으로서 최근 어떤 점에 신경을 많이 쓰나.
“우리는 군인의 목숨이 달린 매우 민감한 장비를 제조한다. 그래서 항상 무결점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점에서 우리 제품은 성능이 뛰어나고 신뢰성이 입증됐다. 그 덕에 생산량이 많이 늘었다. 프랑스 리무르의 공장에서 레이더 생산량은 2023년 10대였지만 1년 만인 작년에 3배로 늘어 30대가 됐다. 올해에는 연간 40대까지 늘릴 예정이다. 영국 벨파스트 공장은 내년까지 생산 능력을 2배로 늘린 뒤 2028년까지 추가로 2배로 늘릴 계획이다.”
―EU는 방산 분야에 1500억 유로(약 239조190억 원)를 대출한다고 발표했다.
“확실히 신규 투자가 필요하긴 하다. 우린 방산 지원에 집중하는 대출 펀드나 저축 상품 등 새로운 자금 조달 방법을 환영한다. 이제 이런 투자가 주문으로 이어져 생산량을 늘리고 혁신을 지속시킬지 지켜봐야 한다.”
―미래 방산에서 어떤 분야가 더 중요해질까.
“세계가 점점 더 디지털화되고 있다. 이 때문에 탈레스는 방위, 항공전자, 사이버 보안 및 디지털 부문에서 10년간 계속 성장했다. 이 과정에서 탈레스는 인공지능(AI) 액셀러레이터인 ‘cortAIx’에 투자할 수 있었다. 또 프랑스, 북미, 영국, 싱가포르에서 강점이 돋보이는 세계 AI 연구 센터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방산에서도 AI가 중요해졌다.
“탈레스는 AI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 AI 시스템과 장비는 기술 우위를 갖고 있어 주권을 지키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AI는 일반적인 레이더로 잡기 매우 어려운 초소형 드론을 탐지할 수 있다. AI가 군에서 제대로 기능하도록 신뢰성을 엄격히 관리하고 안전 요구 사항을 철저히 충족해야 한다.”
켄 회장은 한국의 방산 기업들에도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또 한국과 탈레스가 꾸준히 협력을 진행해 왔다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한국 방산 기업들의 역량을 높게 평가하며 파트너십을 강화할 것을 권했다.
―한국 방산 기업들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 방산 기업들은 국가의 국방 정책을 잘 지원하는 매우 포괄적인 솔루션을 내놓는 능력을 입증했다. 이를 통해 많은 양을 빠른 속도로 납품할 수 있는 매우 강력한 제조 역량을 갖췄다. 이는 긴급한 무기 수요에 대응해야 하는 국가들에 매우 매력적인 요소다. 지금 재무장을 추진하는 유럽이 지향해야 할 바이기도 하다. 한국은 다양한 지역에 진출한 만큼 현지의 지원으로 입지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일부 분야에선 유럽의 기술력이 우위를 점하고 있으니 우리 같은 글로벌 기업과 파트너십을 강화해 현지에서 입지를 강화할 수 있다고 본다.”
―한국과의 협력 계획이 궁금하다.
“탈레스는 20년 이상 한국 우주 산업과 협력하고 있다. 탈레스 알레니아 스페이스는 4개의 군용 관측 위성을 포함하는 ‘K425 프로젝트’ 개발을 위해 한국과 협업해 왔다. 특히 우리는 유럽, 호주, 미국, 중동 등 여러 지역에서 탄탄한 입지를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 방산의) 재수출에 강력한 파트너가 될 수 있다. 최근 파리에서 열린 ‘AI 행동 정상회의’와 작년 서울에서 열린 ‘글로벌 AI 정상회의’에서 보여줬듯 양국 모두 신뢰할 수 있고 책임감 있는 AI 개발에 집중하는 점이 비슷하다.”
―방산 분야도 인재가 중요할 텐데 어떻게 전문 인력을 육성하나.
“탈레스는 운이 좋게도 작년에만 전 세계에서 총 100만 건의 입사 지원서를 받았다. 우리의 주요 목표 중 하나는 엔지니어링 분야에서 더 많은 여성을 채용하는 것이다. 탈레스는 청년들, 그중에서도 여학생들에게 과학과 수학을 장려하려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 올해에는 ‘기술 아카데미’, ‘스템4올(STEM 4 All)’과 파트너십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채용은 동전의 한쪽 면일 뿐이다. 이들이 필요한 기술을 개발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데 이 기술이란 게 매우 구체적이고 고도의 분야다. 이 때문에 ‘진정한 학습 기업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학습 기업으로 키우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나.
“세계 최고 수준의 전문성을 유지하려면 지식의 순환이 필수적이다. 지식의 순환은 직원 개인의 발전에도 도움을 준다. 이를 위해 ‘사내 아카데미’를 세웠다. 2021년엔 사내 아카데미 17개를 운영했다. 올해 말까지는 40개 운영을 목표로 하고 있다. 작년엔 탈레스그룹 직원의 90%가 이런 회사 내부의 교육을 받았다.”
파트리스 켄 탈레스그룹 회장
△1970년 프랑스 파리 출생 △1989년 프랑스 에콜 폴리테크니크 졸업 △1992년 프랑스 파리 에콜 데 민(국립광업학교) 졸업 △2000∼2002년 프랑스 경제·재정·산업장관실 에너지기술고문 △2013년 2월 탈레스그룹 수석부회장·최고운영책임자(COO)·최고성과책임자(CPO) △2014년 12월∼현재 탈레스그룹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 △2015년∼현재 프랑스 항공우주산업협회(GIFAS) 부회장 △2019년∼현재 프랑스 국립연구기술협회 회장 △2020년 프랑스 국가산업위원회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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