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아의 횡포[이준식의 한시 한 수]〈311〉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4월 10일 2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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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채찍질하며 관청 흉내를 내자, 아버지는 철없는 아이들을 측은해하며 곁에서 웃는다.
관아에 앉아 채찍질하고 호통도 치는 아버지, 아이들보다 얼마나 현명하다 하리오?
아이들의 채찍질은 유희지만, 아버지가 분노하여 채찍질하면 백성의 피가 땅에 낭자하지.
똑같은 이런 유희 누가 먼저 시작했나. 내 웃으면서 아버지에게 말했지. 애들이 더 현명하구려.
(群兒鞭笞學官府, 翁憐痴兒傍笑侮. 翁出坐曹鞭復呵, 賢於群兒能幾何.
兒曹相鞭以爲戱, 翁怒鞭人血滿地. 等爲戲劇誰後先, 我笑謂翁兒更賢.)

―‘유감(有感)’ 장뢰(張耒·1054∼1114)


관아의 죄인 심문 장면을 모방해 노는 아이들의 모습에 아버지의 심사가 씁쓸하다. 귀여운 구석이 있었던지 웃음을 내비치긴 하지만 그게 그냥 웃음이겠는가. 저들의 멍청한 유희에 실소를 금치 못한다. 이를 지켜보던 시인이 아이들의 역성을 든다. 저들이 곧 자신의 거울인 것을 아버지가 어찌 모른단 말인가. 한쪽은 그저 유희일 따름이지만 다른 쪽은 사람의 목숨이 달린 형벌이 아닌가. 정도를 따지자면 천양지차다. 참다못해 던지는 한마디. ‘애들이 더 현명하구려.’

두 ‘유희’를 시인은 방관자인 듯 담담하게 비교했지만, 수미일관하는 의도는 관아의 횡포에 대한 질타. 아이의 놀이와 관아의 심문을 유희라고 동일시한 풍자가 신랄하다. 서사는 무미건조하지만 그 때문에 메시지는 외려 더 또렷해졌다. 당시에 비해 서정보다 이성적 논리를 더 중시했다는 송시의 특징을 여실히 보여주는 시다.

#이준식의 한시 한 수#관아#심문#풍자#송시#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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