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체에는 모두 뼈와 살과 가죽이 있다. 하나도 예외 없이 뻣뻣하고 물컹물컹하고 애리애리하기도 한 질감과 양감(量感)을 가진다. 누가 아둔하고 총명하며 누가 귀하고 천하다 말하겠는가. 인간의 눈에 혹여 새는 하찮고 보잘것없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저들이라고 가족과 사랑과 상처와 보살핌이 왜 없겠는가. 활로 쏜다고 말하는 대신 막대기로 나뭇가지를 ‘치지(打) 말라’고 한 걸로 보아 시인이 말하는 ‘가지 위의 미미한 생명’은 매나 독수리 같은 맹금류는 아닌 듯하다. 덩치가 자그마하고 날갯짓도 오종종한, 곧잘 놀라며 우르르 떼 지어 나는 참새나 멧새 따위가 연상된다. 요즘 사냥처럼 차가운 납덩어리로 기어코 핏빛을 보고 마는 무지막지함은 없다고 해도 목숨을 겨눈 비정함에선 도긴개긴이다.
시는 인간의 이기심이나 편협된 자기애를 경계하는 메시지로 읽을 수 있다. 측은지심의 수양이 미물에 대한 존중에서 비롯한다는 교훈이기도 하다. 하나 무엇보다 시인이 강조하는 요체는 모정이다. 자유로이 둥지를 들락이지 못하는 새끼에게 어미새는 지고지상의 존재이자 생명의 에너지다. ‘새끼가 둥지에서 어미 오길 기다리는’ 절박함을 나 몰라라 하는 몰인정을 경계하는 시인의 마음이 융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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