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를 기리며 과거를 참회하는 교토 시민들[이즈미 지하루 한국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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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시인의 시비 ‘기억과 화해의 비’. 이즈미 교수 제공
윤동주 시인의 시비 ‘기억과 화해의 비’. 이즈미 교수 제공
이즈미 지하루 일본 출신·서경대 글로벌비즈니스어학부 교수
이즈미 지하루 일본 출신·서경대 글로벌비즈니스어학부 교수
광복 80주년을 맞은 올해 여름을 일본 교토에서 보냈다. 연구자료 수집이 주된 체류 목적이었다. 일본으로 향하기 직전에 김종훈 작가의 책 ‘항일로드 2000km’를 읽으며 교토에 윤동주 시인의 시비(詩碑)가 3개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윤동주가 일본에 체류한 기간은 3년이다. 그중 교토에서 머문 기간은 고작 10개월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토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그토록 윤동주를 사랑하며 기리는 것일까.

필자는 가장 먼저 윤동주가 하숙을 한 다케다(武田)아파트 터에 2006년 6월에 세워진 ‘유혼지비(留魂之碑)’를 찾았다. 유혼지비는 이곳에서 갑작스럽게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체포됐던 윤동주의 영혼이 해당 터에 머물고 있다는 뜻이다. 현재는 교토예술대의 다카하라 캠퍼스가 들어서 있다. 그 앞에 있는 시비에는 윤동주의 대표작 ‘서시’가 한국어와 일본어로 나란히 새겨져 있다. 이날 필자는 친구와 함께 숙소가 있는 은각사 부근에서 물길을 따라 30분 정도 걸었다. 걷는 도중 발견한 청초한 무궁화꽃을 한국 소주와 함께 시비에 올렸다. 방학 중이라 학교 주변은 인적이 드물었다. 시비는 깨끗이 관리돼 있었다. 윤동주가 언제라도 돌아오길 기다리는 가족 같은 따뜻함이 느껴졌다.

이어 두 번째 시비가 있는 도시샤대의 이마데가와 캠퍼스로 발길을 돌렸다. 이 시비는 윤동주 서거 50주년인 1995년 2월 16일에 세워졌다. 윤동주 시비 중 가장 오래됐다. 가는 길에 교토대 교내를 가로질렀다. 윤동주도 그 길을 사촌인 송몽규와 함께 걷지 않았을까 상상해 봤다. 윤동주는 분명 하숙집에서 대학까지 걸어서 다녔을 것이다.

시비는 대학 서문을 들어서자마자 왼쪽에 보이는 예배당 옆, 해리스 이화학관 서쪽에 있었다. 서시가 새겨져 있었다. 시비 앞에는 수많은 꽃, 태극기, 음료수 등이 놓여 있었다. 한국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 듯했다. 필자도 소주를 올리며 그와 마주했다. 옆에는 올해 2월 16일 도시샤대 개교 150주년을 맞아 윤동주 서거 80주년과 시비 건립 30주년을 기념해 그에게 명예 문화박사학위가 수여됐다는 설명이 있었다. 학위 수여의 이유로 “그 역사 속에 윤동주가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전쟁시대의 교훈을 마음에 새기며 새 시대를 전망해야 한다고 생각해…”라고 쓰여 있었다. 많은 젊은이들이 그의 존재를 알고 잘못된 과거사를 마주하며 참회하는, 앞으로 나아가는 자리가 될 것이다.

세 번째 시비 ‘기억과 화해의 비’는 우지(宇治)강 상류에 2017년 10월 세워졌다. 이 비석에는 윤동주의 시 ‘새로운 길’이 새겨져 있었다. 그곳에 시비가 세워진 까닭은 1943년 초여름 윤동주가 그 강의 아마가세 출렁다리에서 일본인 학우들과 찍은 마지막 사진이 발견되어서다. 사진 속 그는 수줍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 사진을 발견한 다고(多胡) 전 NHK 디렉터에 따르면 전황 악화로 1학기를 마친 뒤 한국으로 귀국을 결정한 윤동주의 송별회 겸 피크닉 사진이다. 이날 윤동주는 즐겁게 놀며 아리랑을 불렀다고 한다.

필자는 그곳을 혼자서 한 번, 그리고 광복절에 ‘시인 윤동주 기념비 건립위원회’ 곤타니 노부코(紺谷延子) 사무국장의 안내를 받으며 한 번 더 갔다. 2002년 출범한 ‘시인 윤동주를 기리는 교토 모임’은 2005년 건립위로 승격됐다. 이를 통해 15년에 걸친 시민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이후에도 계속 비석을 매개로 윤동주를 기리며 역사적 사실을 발굴 조사하고 배우는 모임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필자는 그들의 열정에 압도당했다.

세 개의 시비를 통해 만난 사람들의 공통점은 교토에서 악법에 의해 체포된 젊은 시인 윤동주를 지키지 못한 점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었다. 시비 건립 활동에 참여해 온 81세 데구치 레이코(出口玲子) 씨는 활동을 계속해 온 이유에 대해 “일본이 벌인 침략에 대한 참회의 마음에서”라고 말한다. 또한 그는 “어릴 때부터 봐온 재일동포에 대한 차별도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윤동주를 기억하는 것을 두고 “과거를 기억하고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서”라고 강조했다.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윤동주 ‘새로운 길’ 중)

1000년 넘게 일본의 수도였던 교토는 전통을 중시한 도시다. 그만큼 신분과 민족에 대한 차별의 역사도 뿌리 깊다. 반면 대학이나 연구소가 많고,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며 혁신적인 사고를 지닌 사람들도 적지 않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도 많은 것이다. 이들을 보며 필자 역시 ‘새로운 길’을 걸어갈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윤동주#교토#시비#항일로드#치안유지법#도시샤대#유혼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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