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복’ vs ‘물복’ 뭐가 더 맛날까… 어떤 복숭아에 담긴 탄생 비화[이용재의 식사의 窓]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7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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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재 음식평론가
이용재 음식평론가
‘딱복’과 ‘물복’ 논쟁의 계절이다. ‘딱딱한 복숭아’와 ‘물렁한 복숭아’, 어느 쪽이 더 맛있는가? ‘딱복파’라면 이미 발끈했을 것이다. ‘아삭한 복숭아’가 맞고 ‘딱딱한 복숭아’는 멸칭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그들은 ‘우리는 평화와 공존을 지향하는데 물복파가 도발한다’고 주장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물복파는 ‘딱복은 무다. 깍두기나 담가 먹어라’ ‘여름은 쇠고기 딱복국의 계절’이라고 딱복파를 놀린다.

이와 별개로 요즘 딱딱한 복숭아의 지분이 상당히 커졌으니, 나는 이 현상에 음모론의 양념을 약간 쳐서 이해하고 있었다. 토마토와 같은 사례로 본 것이다. 토마토는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다 보니 이제 식재료보다 상품에 가깝다. 단단하게 품종이 개량됐고, 색이 파랄 때 조기 수확한다. 한여름의 ‘완숙 토마토’마저 맛과 향이 거의 없지만 우리는 이제 그런지조차 깨닫지 못하고 먹는다. 복숭아는 토마토보다 더 무르고 약한 과일이다. 이 때문에 유통 과정을 더 잘 견디는 품종을 개발해 야금야금 지분을 늘려 왔다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복숭아를 좋아하는 바텐더로부터 ‘과일의 세계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제보를 받았다. 좀 더 단단하게 세상에 태어나고자 지난한 여정을 겪은 품종의 이야기였다. 딱복파와 물복파의 평화로운 공존을 위해 이 복숭아의 일화를 소개해본다.

1952년, 일본 농림청 산하 과수시험장에서 ‘하쿠토’와 ‘하쿠호’를 교배해 새 복숭아 품종을 개발했다. 새 품종에 ‘Re-13’이라는 이름을 붙여 후쿠시마현을 비롯한 12곳의 현에서 시험 재배했다. 1962년 후쿠시마현에서 첫 수확을 했는데 단맛과 신맛의 균형이 매우 좋았고 모양과 색깔도 흠잡을 데 없었다. 딱딱해 수확을 잘 견디지만 상온 후숙을 거치면 물렁해져 딱복과 물복의 장점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다만 과실이 작아 상품성이 떨어졌다. 규격상 5kg 상자에 18∼20개가 들어가도록 개당 250∼280g이 나가야 했다. 하지만 Re-13은 200g을 넘지 못했다. 과실을 더 키우고자 10년 이상 국가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실패했다. 결국 1971년 Re-13의 연구 및 실험이 종료됐다. 그중 후쿠시마현의 Re-13이 194g(1970년 기준)으로 가장 크게 자랐다. 포기할 수 없다고 본 과수시험장의 연구원 하라다 료헤이가 영농 후계자인 스즈키 신지에게 묘목을 인계했다. 이미 복숭아 농사를 짓고 있었던 그가 모묙을 심어 3년 만에 수확한 Re-13은 200g을 훨씬 넘겨 단박에 상품성을 보장받았다.

비결은 비옥한 토양이었다. 비료를 많이 먹는 오이를 재배한 토양에 복숭아를 심자 과실이 크게 맺힌 것이다. 너무 물러질까 봐 복숭아를 키울 때 비료를 적게 주는데, 단단한 품종이라 잘 견뎠다. 그렇게 Re-13은 ‘아카쓰키’로 살아남아 수많은 복숭아의 조상이 됐다.

필자는 향긋한 즙의 물복을 조금 더 선호하고 사레가 들릴 정도로 딱딱한 복숭아는 멀리한다. 하지만 이런 탄생 비화를 듣고 나면 ‘깍두기’랄지 ‘쇠고깃국’ 같은 폄하의 시각은 거두고, 딱복이든 물복이든 제철일 때 하나라도 더 열심히 먹자고 다짐하게 된다. 이다지도 지독한 여름, 복숭아 맛있게 먹는 낙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복숭아#딱복#물복#품종개량#아카쓰키#Re-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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