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적이라고 오해받는 사람들[김지용의 마음처방]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9월 21일 2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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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용 연세웰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김지용 연세웰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전 사람들하고 어울리는 거 좋아하거든요. 그러고 싶고요. 그런데 그러지 못하고 다 회피하는 제가 너무 이해가 안 가고 싫어요. 대체 왜 이런 걸까요?”

진료실에서 심심찮게 듣는 말이다. MBTI 검사를 해봐도 스스로가 외향형에 해당되는 것 같은데, 실제 생활은 정반대라고 한다. 친구들 연락도 피하고, 확인하지 않은 메시지가 계속 쌓여만 간다고 한다. 이렇듯 ‘내향형’ ‘외향형’만으로는 성격을 설명하기에 부족하다. 외향적인 이도 사람들과 어울리기 힘들어 할 수 있고, 그로 인해 내향적이라 오해받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회피성 성격’이 있다. 이들은 친밀한 관계를 바라지만 거절, 비난, 수치심에 대한 극심한 두려움 때문에 결국 관계를 피하게 되고 외로움에 시달린다. 사회적 상황에서 조롱받고 비난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집착하기에 자신을 좋아한다는 확신이 서지 않으면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피한다. 스스로 부적절한 사람이라 느끼기에 아주 친밀한 소수의 관계를 제외하고는 다 두려워하고 긴장된 상태로 임한다. 초기 성인기에 시작된 이러한 성격 특성이 굳어지고 광범위하게 삶에 지장을 일으킬 때 ‘회피성 성격장애’를 진단하게 된다.

‘왜 그렇게 별것도 아닌 걸 두려워해. 그냥 눈 딱 감고 용기 내면 되는 것 아니야?’라고 말하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이 심리적 고통은 당사자가 아니고선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예를 들어 첫 직장 회식 자리에 초대받으면 그 전날부터 사람들이 자신을 싫어할 것 같다는 불안에 잠을 설친다. 결국 거절 못 해 참석한 회식에서도 말실수할까 겁내다가 대화를 못 이어 나가고, 귀가 후에도 다들 날 싫어했을 거라는 생각에 괴로워한다. 이후 출근길에 마주친 사람들과 대화 나눌 것이 두려워 아무도 없는 새벽녘에 출근하기도 한다. 스스로에 대한 부적절감과 그로부터 비롯되는 과도한 수치심, 이 핵심 감정이 그들의 삶을 지배한다.

이런 회피성 성격장애는 타고난 유전적 요인과 아동기의 경험, 그리고 심리적 요인이 서로 얽히며 형성된다. 선천적으로 불안이 높은 아이는 새로운 사람이나 환경에 더 예민하게 반응하기에 회피성 성격의 바탕이 될 수 있는데, 절대 이것만으로 결정되진 않는다. 대부분 안타까운 과거 경험들이 동반돼 있다. 어린 시절 지나치게 차가운 부모로부터 적절한 감정 반응을 받지 못했거나, 지나치게 통제적인 부모로부터 항상 감정이 무시당하는 경험이 쌓여 온 경우들이 대표적이다. ‘나는 존중받을 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굳어지며 위축된 대인 관계 패턴이 형성되게 된다. 또 가정에서는 안정적 애착을 맺었지만 이후 학창 시절 심한 따돌림 등을 겪으며 회피성 성격이 자리 잡게 되는 경우도 있다.

성격은 잘 안 바뀌긴 하지만 꾸준한 노력에 의해 분명히 변한다. 회피성 성격의 경우 장기적 치료를 통해 절반 정도는 유의미한 변화를 이뤄내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번 글에서 설명한 특성들로 길게 고통받아 왔다면 타고난 성격 탓이라고만 여기며 포기하지 말고, 치료에 도전해 보길 바란다.

※김지용 연세웰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은 2017년 팟캐스트를 시작으로 2019년 1월부터 유튜브 채널 ‘정신과의사 뇌부자들’을 개설해 정신건강 정보를 소개하고 있다. 9월 기준 채널의 구독자 수는 약 29.1만 명이다. 에세이 ‘빈틈의 위로’의 저자이기도 하다.

김 원장의 ‘내향적이라고 오해 받는 사람들’ (https://youtu.be/8pjQApsS27Y?feature=sha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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