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과학의 힘은 밀물과 같다. 저 멀리 지평선에서 보이기 시작했던 밀물이 어느새 바닷가로 밀려드는 것처럼, 과학은 우리가 모르는 새 서서히 우리에게 밀려오고 있다. 현재의 인공지능(AI)을 보면, 거부할 수 없이 다가오는 바닷가의 밀물이 떠오른다.
이번 학기에 학부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습 프로젝트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손동작이나 몸동작을 CCD 카메라로 인식시키고, 이 신호를 무선 블루투스로 보내 원격으로 기계를 작동시키는 프로젝트다. 먼저 부품을 구매해서 기능을 익히게 한 다음, 컴퓨터로 프로그램을 코딩해 작동시켜 보도록 한다. 학생들이 이론만 배우는 게 아니라 실습을 통해 직접 기기를 만들어볼 수 있는 수업이다.
예전 같으면 처음 해보는 것이니까 학생들이 프로젝트를 완성하기까지 몇 달이 걸렸다. 하지만 지금은 몇 주 만에 뚝딱 해치운다. 챗GPT 덕분이다. 3, 4명이 한 팀을 이루는데, 어느덧 챗GPT는 보이지는 않지만 똑똑한 팀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다른 전공 수업도 마찬가지다. 매번 강의가 끝나면 숙제를 내주는데, 채점을 해보면 예전보다 이해도가 더 높아졌다.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보았는데, 친절한 조교인 챗GPT의 도움 덕분인 것 같다. 어찌 되었든 잘만 활용한다면 좋은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도라에몽’이라는 일본 만화영화가 있다. 이 만화영화에는 22세기에서 온 도라에몽이 나온다. 이 로봇 고양이는 친구 노진구의 숙제를 대신 해주거나 위기를 벗어날 수 있게 도와준다. 도라에몽의 주머니는 만물상자와 다름없어서 말만 하면 주머니에서 신비하고 재미난 비밀 도구들이 쏟아져 나온다. 도라에몽과 진구는 서로 힘을 합쳐 복잡한 사건을 해결해 나가고, 더 나은 방향으로 성장해 간다. 과장될지 모르지만, 우리에게 챗GPT는 점점 더 도라에몽과 같은 존재가 돼가고 있다.
2024년 노벨 물리학상은 존 홉필드 미국 프린스턴대 명예교수와 제프리 힌턴 캐나다 토론토대 명예교수에게 공동 수여됐다. 인공 신경망 연구로 기계학습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공로를 인정받았다. 둘 다 AI 시대의 주춧돌을 놓은 선구자들이다. 힌턴 교수는 인간 뇌의 신경망을 모방해 정보를 저장하고 재구성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고, 홉필드 교수는 통계물리학을 이용해 데이터의 속성을 독립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수학적 방법을 만들었다. 이들의 연구는 AI가 단순한 계산 기계에서 학습하고 추론하는 존재로 진화하는 데 중대한 전기를 제공했다.
AI는 인간 뇌의 작동 원리를 모방하고 활용함으로써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뇌에는 1000억 개의 신경세포가 있고, 신호를 전달하는 100조 개의 시냅스가 존재한다. 뇌 속의 뉴런이 작동하는 신경망 구조를 본떠 만든 알고리즘이 인공 신경망이다. 이 토대 위에서 AI는 점점 ‘생각하는 기계’로 발전하는 중이다.
앞으로 10년 후 미래의 AI는 어떻게 변화해 있을까? 분명한 점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의 AI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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