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끝나자마자 중대 외교현안 몰려올 것
숙련된 외교 대통령 기대하기 쉽지 않다면
최적 외교안보 수장 둔 시스템에 의존하고
국민과 적극 소통해 정책 정당성 확보해야
전재성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6·3 대선 과정에서는 경제 및 일자리, 정치 개혁 등 국내 의제들을 둘러싼 경쟁이 두드러졌지만 새 정부 출범 직후에는 급박하고 중대한 외교 현안들이 몰려올 것이다. 그러나 후보들의 면면을 보면 ‘외교 대통령’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언젠가는 외교 정책에 대한 깊은 이해와 실무 경험, 해외 주요국 방문을 통한 국제 감각, 그리고 세계 지도자들과의 신뢰 기반 네트워크를 고루 갖춘 외교 대통령의 등장을 바라 본다.
유례없이 심대한 국제질서의 격랑 속에서 내치도 중요하지만 대통령의 외교적 식견이 더욱 절실한 때다. 미국에서는 대통령을 ‘내치형’과 ‘외교형’으로 나누기도 한다. 외교형 대통령이 아니라면 성공적인 외교 성과를 위해서는 시스템에 의존해야 한다.
우선 유연하고 통합적인 외교정책 결정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지금까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와 대통령비서실 중심의 시스템이 정부별로 번갈아 채택돼 왔으나, 정책 목표와 상황에 따라 최적의 조합이 결정돼야 한다. 중장기 전략 개발과 정책의 연속성 확보는 물론이고 현안 대응을 위한 대통령 보좌와 부처 간 조율 역시 중요하다. 전략적 기획과 신속 대응을 조화롭게 이룰 수 있는 정책 결정 인프라를 찾아야 한다.
외교정책을 총괄하는 수장과 외교·국방·통일부 장관을 최적의 인물로 채우는 것도 중요하다. 대통령이 정확하고 미래지향적인 비전을 갖도록 돕고, 급변하는 국제 정세에 다양한 정책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실력과 경험을 겸비한 인물을 발탁해야 한다. 사심 없이 부처 간 조율에 힘쓰며, 최고의 전문가 네트워크도 활용해야 한다. 민주주의 퇴행이라는 국제적 흐름 속에서 능력보다 충성도, 정책 비전보다 국내 정치의 진영 논리에 따라 주요 인사가 임명되는 해외 사례들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대통령을 위해 쓴소리를 할 수 있는 인사들을 곁에 두는 것도 필수적이다.
국제질서의 변화가 근본적일수록 중장기 외교전략을 놓고 치열하게 논의할 정부 내 공식·비공식 토론의 장이 필요하다. 단순한 위기 관리와 현안 대응을 넘어 대통령과 수석, 부처 장관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고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국무회의 등을 통해 대통령 지시를 이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개별 부처의 정책을 넘어 정부 전체가 추구할 공통의 장기 목표를 주기적으로 점검하는 전략적 토론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
지금은 ‘경제의 안보화’와 ‘안보의 경제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시대다. 최근의 관세 전쟁에서 보듯 경제가 안보를 위한 핵심 수단이 되고, 안보 전략도 경제적 기반 위에서 설계되는 구조다. 외교안보와 경제안보를 통합하기 위해 경제 부처와 외교·안보 부처 간 실질적 협력을 가능하게 하는 컨트롤타워를 구축해야 한다. 특히 공급망 단절, 첨단 기술 유출, 대외 제재 등의 의제를 다룰 전문적인 경제안보 조직이 대통령을 보좌해야 한다.
한국의 대외 정책에서 기업 경쟁력이 주요한 수단으로 부상하고 있다. 정부와 기업 간 신뢰와 협력의 틀을 마련하고, 민간의 혁신 역량과 정부의 정책 지원이 일관되게 이뤄져야 한다. 기업들이 정부를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면 각자 지정학적 리스크를 관리할 전담 조직을 두고, 외국 정부를 상대로 대관 조직을 만들어 대응하게 된다. 이는 기업에 비용과 인력 부담을 가중시키고, 정부 대비 정보 비대칭의 한계를 겪게 한다. 이를 해결하려면 정부가 기업들에 정책 정보와 네트워크를 적극적으로 제공하고, 기업 간 조율 업무도 수행해야 한다.
미중 전략 경쟁이 군사, 경제, 기술, 외교 등 전 분야로 확산되면서 양국의 동향을 정확히 파악하는 일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미국 우선주의와 거래적 외교를 앞세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 국내 동향에 대한 전문적인 분석과 네트워크 강화 노력이 필요하다. 정부 내 중국 전담 부처의 역량과 대통령실 내 전문인력 보강도 시급하다. 주변국과의 유화 외교를 강화하는 중국과 전략적 소통을 강화하고, 적시에 유연한 외교를 펼쳐 국익을 극대화해야 한다. 주요국들과의 전략 대화를 정기적으로 하면서, 민간 차원의 접촉인 ‘트랙2’ 네트워크도 다시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국민이 대통령과 외교정책 결정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판단할 수 있는 기회를 자주 마련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 대통령뿐만 아니라 외교안보보좌관, 국무장관, 국방장관 등이 정기적으로 언론에 등장해 정부의 입장을 설명한다. 정부에 비판적인 매체에도 출연해 국민의 이해와 동의를 구한다. 한국도 이제 외교정책 핵심 인사들이 정책의 배경과 목적을 소상히 설명하고, 국내 정치의 진영 논리에 따라 국익이 휘둘리지 않도록 적극적인 국내 공공외교를 펼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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