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높은 인기를 업고 재선된 직후다. 대법원이 거듭 뉴딜 정책은 위헌이라 판결했다. 이를 눈엣가시로 여긴 루스벨트 대통령은 법을 바꿔 대법관 수를 늘리려 했다. 여당이 상·하원 모두 압도적 다수이니 문제없어 보였다. 그러나 결국 그 계획은 제동이 걸렸는데, 여당 의원들이 반대한 결과였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지해도 대법원 재구성 계획은 찬성할 수 없다”고 했다. 미국 어떤 대통령도 사법기관을 입맛대로 바꾸려 하지 않은 절제의 규범을 루스벨트가 깨려 했기 때문이었다.
“루스벨트 지지해도 그 계획은 반대”
대통령이 잘못된 길에 들어설 때 집권 여당의 견제가 그 경로를 바꿀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정치사에선 오히려 여당이 대통령 뜻대로만 움직이며 브레이크 없는 입법 독주로 내달린 적이 많았다. 문재인 정부 때 총선 승리로 압도적 다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은 부동산 관련 법 등 논란의 법안들을 국회 절차를 무시하며 속전속결로 통과시켜 반발을 불렀다. 이는 이듬해 여당이 서울시장·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패배한 주된 원인 중 하나가 됐다.
지금 민주당은 5년 전 민주당보다 더 사납게 달릴 태세다. 대통령 당선 시 형사재판 면제 법안, 허위사실공표자 대상 축소 법안 등 이른바 ‘이재명 방탄법’의 대선 직후 처리를 벼른다. 당선이 확실한 이재명 후보가 일극체제란 말이 나올 정도로 민주당을 장악한 것과 무관치 않다. 개딸로 대변되는 이재명 팬덤은 민주당이 아니라 이 후보에게 열렬하다.
그런데 민주당은 이제 3년 만에 처음으로 이 후보 아닌 새 당 대표를 뽑아야 한다. 가장 쉬운 길은 ‘이재명당’일 때의 민주당이다. 새 대표가 누구든 대통령 뜻에 따라 독주를 불사하는 거여(巨與)에 강성 이재명 팬덤은 환호할 것이다. 그러나 그때의 민주당을 ‘국민의 다양한 의사를 수렴해 정책과 입법으로 실현하는 국정의 공동 책임자’라 부르기는 어려울 것이다.
입법, 행정 권력이 한몸처럼 서로 견제하지 못하면 민주주의는 다시 위기에 빠진다. 대통령이 권력을 절제하지 못하거나 민의를 거스를 때 “아니요”라고 말한다면, 수적 우위를 앞세운 힘의 정치에서 벗어나 자제력을 보인다면 민주당은 한때 이재명 팬덤의 분노를 살지언정 국정 성공의 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여야 제 모습 찾아야 정당정치 회복
민주당에 그 길이 쉽지 않은 만큼 3년 만에 소수 야당으로 전락한 국민의힘이 정당의 제 모습을 찾는 길은 더욱 험난해 보인다. 국민의힘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독단을 막기는커녕 그 그늘에서 당권 투쟁의 패싸움을 벌이다가 스스로 무너졌다. 윤 전 대통령 집권 이후 당 지도부가 12차례 바뀌었다. 그 결과 국민의힘은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하려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정당이 돼버렸다.
지금도 국민의힘은 당권 투쟁으로 바쁜 모습이다. 계파의 사익에 급급한 파당(派黨)은 공동체의 비전 대신 상대 진영에 대한 혐오를 택하기 마련이다. 대선 이후에도 대선 때처럼 반(反)이재명 구호만으로 수명을 이어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야당은 반대자이지만 입법 권력 없는 소수 야당은 보이콧 정치만으로 살아남기 힘들다. 집권 세력과 경쟁하며 적대를 넘어서는 대안 세력이 돼야 국민의 다음 선택을 기대할 수 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제가끔 가시밭길에 섰다. 쉬운 길을 가겠다면 대선 전처럼 하면 된다. 어렵더라도 여당이 대통령을 견제하며 야당을 대화와 타협의 파트너로 삼고, 야당이 대통령과 여당을 집권 경쟁의 상대로 존중하는 정당정치 복원의 길로 가야 한다. 정당이 제 기능을 찾지 못하면 민주주의 회복의 대선 의미도 퇴색된다. 아무런 변화도 없으면 그저 또 한 번의 선거가 지나간 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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