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이재명 당선… 절제와 포용으로 ‘정치 복원’부터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6월 4일 02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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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3일 인천 계양구 자택 앞에서 주민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21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3일 인천 계양구 자택 앞에서 주민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제21대 대통령으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당선됐다. 이 후보는 4일 개표가 완료된 오전 5시 25분 기준 49.42%를 얻어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를 8.27%포인트 앞섰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8.34%를 얻었다. 이번 선거 최종 투표율은 79.4%로 2000년대 치러진 대선 중 가장 높았다.

이번 조기 대선은 12·3 비상계엄으로 인한 대통령 파면에 따라 치러졌고 윤석열 정권에 대한 헌법적 심판에 이은 정치적 심판의 성격을 피할 수 없는 선거였다. ‘내란 극복’을 내건 이 대통령의 당선으로 시대착오적 계엄령에 훼손됐던 민주주의는 이제 꼭 6개월 만에 민주적 회복을 위한 중요한 한 고비를 넘겼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 민주주의의 정상화, 복원의 마무리를 의미하진 않는다. 온전한 치유를 위해 이제 막 시동 걸기를 마친 것일 뿐이다.

이 대통령 당선은 진작 예견된 것이었다. 이 대통령으로선 3년 전 0.73%포인트 차로 낙선했던 대선 재수생으로서 절치부심 준비한 결과일 테지만, 그 못지않게 정권의 어처구니없는 실책에 놀란 국민의 거센 정권교체 여론을 등에 업은 반사이익의 수혜자인 것도 사실이다. 당내 경선에서 89.77%라는 압도적 지지를 받은 이 대통령은 대선 레이스 내내 지지율 선두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이 대통령에게 이번 선거는 국민의힘의 잇단 헛발질 덕에 누가 진짜 경쟁자인지조차 모호한 상태로 치러졌고 사실상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편으론 그런 탓에 자신에게 얽혀 있는 사법 리스크와 부주의하게 내뱉은 실언(失言)을 둘러싼 각종 논란에 시달렸고, ‘이재명 당선은 곧 총통 독재의 출현’이라는 국민의힘 측 공격을 방어하는 데 진력해야 했다.

이 대통령은 선거전 내내 “반쪽에 의지해 나머지 반쪽을 탄압하고 편 가르는 ‘반통령’이 아닌, 국민을 하나로 모으는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거듭 다짐했다. 하지만 그를 지지하지 않은 절반 가까운 국민의 불신은 여전하다.

무엇보다 국회 권력에 행정부 권력까지 쥔 터에 사법부마저 장악하기 위해 무리수를 둘 것이라는 우려가 만만치 않다. 이 대통령은 정치 보복을 하지 않겠다면서도 “통합과 봉합은 다르다”며 비상계엄에 대한 철저한 단죄를 약속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의 ‘적폐 청산’ 시즌2를 예고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그래서 나온다.

내란에 관한 단죄는 사법의 영역에서 다뤄질 일이다. 무리한 개입은 정치적 반대자를 ‘배제’하는 일방통행으로 스스로를 지지층만의 대통령으로 고립시킬 뿐이다. 더욱이 우리가 처한 냉엄한 현실은 그런 정치적 다툼에 골몰할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의 성장엔진이 꺼져 가고 70년 동맹구조마저 흔들리고 있다는 경고음이 높다.

대통령은 더 이상 야당의 수장도, 지지 세력의 대표자도 아니다. 국가원수이자 군 통수권자, 국정 최고책임자다. 그 권력은 막강하고 제어하기 힘들어 잘못 다루면 위험해진다. 법치에 토대를 둔 절제된 권력 행사, 즉 자제와 포용의 정치 없이는 독단에 빠질 수밖에 없다. 불행한 역대 대통령들이 그랬다. 그런 유혹을 이겨내는 것이야말로 성공적인 대통령직 수행을 위한 제1의 덕목일 것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정치 양극화는 그런 절제와 포용이 사라진 극단적 권력 정치의 부산물이다. 편견과 혐오, 분열과 반감을 먹고사는 정파적 양극화의 해소 없이 안팎의 국가적 위기 극복은 불가능하다. 귀를 열고 반대자의 목소리부터 듣고 진지한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이 대통령을 찍지 않은 국민 절반의 협력, 아니 최소한 이해라도 얻어야 한 걸음이라도 국정의 전진을 이뤄낼 수 있고 온전한 국민적 에너지의 결집도 기대할 수 있다.

이 대통령은 오늘 곧바로 취임해 임기를 시작한다. ‘권불 5년’이라지만 5년은 뭔가를 이루기엔 턱없이 짧은 시간이고, 뭐든 망치기엔 하염없이 긴 시간이다. 무엇보다 과욕은 절대 피해야 할 함정이다. 역사에는 의욕에 넘쳐 잘못된 선택을 했던 지도자의 실패가 무수히 각인돼 있다.

막 취임한 대통령에게는 첫 1주, 1개월, 100일이 중요하다. 힘도 넘치고 의욕도 충만한 그 시간에 남은 임기를 좌우할 실패의 씨가 뿌려질지 성취를 향한 첫걸음을 내디딜지 결정된다. 첫 방향과 속도부터 제대로 잡아야 한다. 억지로 추력만 높여선 안 된다. 전후좌우에서 당기고 밀고 받쳐주는 가운데 목적지와 이정표를 정확하게 설정하고 속력을 내야 한다.

인사(人事)가 만사이고, 언사(言事)가 만사이기도 하다. 능력 있는 전문가들로 내각과 참모진을 꾸리되 주변엔 듣기 싫은 얘기를 할 수 있는 인물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대통령의 말은 천금 같아야 한다. 한 마디 한 마디 무게 있고 절제된 언어에 대통령과 나라의 품격이 실려야 한다. 그래야 그를 찍지 않은 절반의 국민도 마음의 문을 열 수 있다.



#이재명#대통령 당선#정치적 심판#민주주의 회복#정권교체#사법 리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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