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지방자치가 본격적으로 부활한 지 30년이 되는 뜻깊은 해다. 1995년 지방자치단체장에 대한 주민직선제 도입 이후 지방자치는 단순한 제도적 틀을 넘어 지역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생활 자치’로 발전해 왔다. 아울러 지역의 창의적 정책이 중앙정부의 제도로 확산된 사례도 점차 늘고 있다. 예를 들어 서울 송파구는 2007년 전국 최초로 남자 화장실에 기저귀 교환대를 설치했다. 남성 보호자들은 외출 시 아이의 용변을 해결할 공간을 찾기 어려웠던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지방정부는 주민과 긴밀하게 소통하며 생활현장 중심의 정책 실험을 선도하고 있다. 충북 충주시는 수소저상버스 운행에 맞춰 승강장 시설을 개선했다. 과거 해결하지 못했던 행정서비스의 불편 사항은 기관 간 협업으로 해결하기도 한다. 경북 영주시는 평은면 등 상수도 공급이 어려운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접한 경북 안동시와 협력해 지방상수도를 상호 수급했다. 농촌 고령화에 대응한 맞춤형 서비스도 눈에 띈다. 영암군은 농업인을 대상으로 ‘농촌 왕진버스’를, 전라남도는 ‘행복버스’를 통해 지역 간 의료 격차 해소에 나서고 있다.
이처럼 지방정부는 주민 가까이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민첩하게 해결해 왔다. 그러나 뚜렷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지방자치는 여전히 ‘2% 부족한 자치’라는 평가에서 자유롭지 않다. 재정·입법·자율성 측면에서 여전히 중앙에 의존하는 구조가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지방자치는 실질적으로 분권이 이뤄지고, 주민 중심의 자치로 나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치재정권 확보가 핵심이다. 국세 일부를 지방세로 전환하고 지역 여건에 맞는 새로운 세원을 발굴해 지방세 비중을 확대해야 한다. 특히 낙후 지역에 대해서는 국가가 보다 적극적으로 재정을 조정해야 한다.
자치입법권 보장도 시급하다. 현재 헌법은 ‘법령의 범위 내’에서만 조례, 규칙 등을 제정할 수 있게 한다. 중앙정부의 법령에 저촉되는 경우 지역 특수성을 반영한 입법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실질적인 입법 자율성을 부여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이 검토돼야 한다.
또 지방자치의 중심은 주민이어야 한다. 주민자치회 등 주민 참여를 독려할 수 있도록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주민이 지역 정책 형성과 실행 전반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중앙과 지방은 수직적 위계가 아닌 상호보완적 파트너가 돼야 한다. 중앙정부는 전국적인 통일성과 형평성을 요구하는 분야에 집중하고, 지방정부는 자율성과 책임을 기반으로 지역 특화형 정책을 실행하는 구조가 정착돼야 한다.
지방자치의 진정한 힘은 바로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빠르게 반응할 수 있는 행정’이라는 데 있다.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가 주민의 삶을 바꾸고, 그것이 모여 국가의 미래를 바꾼다. 앞으로의 30년은 권한과 재정이 함께 이양되는 ‘지방이 주도하는 자치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 지방정부는 생활자치의 기반 위에서 지역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혁신의 주체이자 선도자로 거듭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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