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항공청 1년, 권한도 조직도 재정비해야[기고/이태식]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6월 24일 2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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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식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
이태식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
지난해 5월, 대한민국은 사상 처음으로 우주개발 전담 기관인 우주항공청을 출범시켰다. 정부는 이를 통해 ‘2032년 달 착륙, 2045년 화성 탐사’라는 국가 비전을 실현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그 꿈은 오히려 멀어지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기대만큼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 왜일까.

무엇보다 우주청의 위상과 권한이 지나치게 약하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나 유럽우주국(ESA)처럼 독립성과 조정력을 가진 기구가 아니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외청에 머물러 있다. 예산 조정 권한도 없고, 타 부처 및 민간기업을 조율할 힘도 없다. 국가 우주 전략을 이끌 컨트롤타워라기보다, 정책 집행의 말단 역할에 그치고 있다. 정책 기획과 집행 사이 간극은 커지고, 각 부처와 민간기업 간 협업도 원활하지 않다.

인력과 조직 역시 부실하다. 정책 수립, 기술 기획, 산업 육성, 국제 협력 등 핵심 기능을 담당할 전문 인력이 태부족이다. 우주강국을 외치는 정부의 구호와 달리, 우주청 내부는 과거 과기정통부 우주정책과의 연장선에 불과하다는 자조적인 목소리도 나온다. 장기 비전을 실현할 전략 기획 능력도 미흡하다. 단기 과제 위주의 사업으로는 중장기 목표인 달 착륙이나 화성 탐사를 뒷받침하기 어렵다.

더 큰 문제는 우주산업 생태계와의 단절이다. 우주기업을 육성하고 민간투자를 이끌어내야 할 우주청이 산업계와 얼마나 소통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기업들은 정부의 방향을 알기 어렵고, 공동 프로젝트나 기술 이전도 활발하지 않다. 특히 글로벌 우주산업은 민간이 주도하고 있음에도, 한국은 여전히 정부 중심의 ‘관 주도형’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민간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살릴 제도적 유인과 정책적 연계가 절실하다.

우주청의 위치도 재고해야 한다. 경남 사천시에 본청을 뒀지만, 실제 우주 관련 정책 수립은 세종, 기술 개발은 대전, 국제 협력은 서울에서 이뤄진다. 어떤 부처보다 국제 협력이 많아야 하는 조직이지만 협상자와 직접 대면해 협력을 논의하기에는 물리적 거리감이 너무 크다. 인재를 유치하는 데에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에 NASA처럼 복수 거점을 둔 다핵 구조 운영을 검토할 시점이다. 하나의 조직이 여러 기능을 분산해 효과적으로 수행하려면, 유기적인 연계 체계와 디지털 기반 통합 관리 시스템도 함께 도입돼야 한다.

이제는 우주청을 실질적인 전략 기관으로 재정비해야 한다. 대통령 직속 혹은 국무총리 산하로 격상시켜 국가전략을 주도할 수 있어야 한다. 나아가 ‘우주산업진흥법’을 제정해 민간 기업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도 마련해야 한다. 제도화된 민관 협력 플랫폼, 장기 연구개발(R&D) 지원 체계, 우주 전문 인력 양성 프로그램 등도 함께 추진돼야 한다.

우주는 단지 과학기술의 영역이 아니다. 산업, 안보, 외교, 교육이 총체적으로 얽힌 종합 국가전략이다. 출범 1년을 맞은 지금이, 우주청을 다시 설계할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예산이 아니라, 더 나은 구조와 책임 있는 리더십이다. 대한민국이 우주강국으로 도약하려면, 그 시작은 우주청의 근본적 개편이어야 한다. 더 늦기 전에, 방향을 바로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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