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일본에서는 유례없는 대형 철도 사고가 발생했다. JR서일본이 운행하는 후쿠치야마선 다카라즈카∼아마가사키 구간에서 탈선사고가 발생해 1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나온 것이다. 기관사가 커브 구간에서 제한속도 시속 70km를 훌쩍 넘는 시속 110km로 운전한 사실이 드러나며 기관사의 운전 미숙으로 사고 원인 조사가 일단락되는 듯했다.
하지만 유가족들은 이 같은 설명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유가족들은 기관사가 그처럼 무리하게 운전하게 된 ‘진짜 원인’이 무엇인지를 알려달라고 요구했다. 2007년 나온 최종 보고서에는 구체적인 사고 정황뿐 아니라 JR서일본 전체의 조직문화를 짚는 내용이 담겼다. 무리한 운행 시간표 설정과 정시 운행만을 강조하는 관행, 최신 안전장치 도입 지연, 운행 지연이나 사고를 기관사 개인의 능력 부족 탓으로 돌리며 반성문 작성 등으로 처벌하는 후진적 관행 등이 그것이다.
2024년 12월 30일 전남 무안국제공항 활주로에 전날 발생한 제주항공 참사 여객기의 잔해와 동체 착륙의 흔적이 남아 있다. 2024.12.30. 뉴시스최근 진행되는 무안 제주항공 참사 사고조사를 보며 문득 후쿠치야마선 사고가 떠올랐다. 유례없는 참사라는 점, 그리고 사고 조사 초기 과정이 어딘가 닮아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동시에 사고 조사의 진정한 목적이 무엇인지 국토교통부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가 착각하고 있는 것 아닌지 우려가 들었다. 19일 유가족들에게 사전 브리핑된 엔진 정밀조사 결과에는 조종사가 새떼와의 충돌 이후 손상이 덜 된 엔진의 시동을 껐다, 랜딩기어 등 착륙 관련 장비를 작동하지 않은 정황이 있다 등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자칫 조종사의 실수가 사고의 원인이라고 결론짓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조종사가 극한 상황에서 실수를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사고의 결과에 가깝다. 조종사가 실수를 한 것이 사실이라면 비행 스케줄에 무리는 없었는지, 관제탑과의 교신 등 새떼와의 충돌을 피하기 위한 예방조치는 적절했는지, 비상시 대처에 필요한 교육은 평소 제대로 실시됐는지, 비행기가 충돌한 방위각 시설을 포함해 공항시설은 문제가 없었는지 등도 모두 조사돼야 한다. 그래야 또 다른 사고가 나는 것을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번 조사 결과는 엔진만을 조사한 중간 결과일 뿐이다. 앞으로도 최종 보고서가 나오기까지는 1년가량 시간이 남아 있다. 하지만 단편적인 결론만 담겨 있는 이번 중간조사 결과는 자칫 이후의 사고 조사 과정을 ‘책임자 처벌’만을 위한 것으로 변질시킬 수 있다.
후쿠치야마선 사고 유가족들은 최종 보고서가 나온 뒤에도 10년 가까이 JR이 실제로 변화하고 있는지 수차례 JR 측과 과제검토회 등을 열며 검증해 왔다. 또 이처럼 집요하게 변화를 요구하는 이유를 ‘유가족의 사회적 책임’ 때문이라고 말해왔다. 또다시 비슷한 사고가 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자신들의 책임이며, 그렇게 됐을 때 비로소 자신들 역시 사고로 인한 고통을 조금이나마 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조사 결과에 격렬하게 항의한 무안 제주항공 참사 유가족들도 같은 마음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국토부와 사고조사위가 사고 조사의 진짜 목적이 무엇인지 되새기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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