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신규진]실용외교에 물음표 붙인 ‘4강 중심’ 전례 깬 특사외교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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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진 정치부 기자
신규진 정치부 기자
지난달 초 정부는 4강(미·중·일·러)을 중심으로 대통령 특사단을 보내던 전례와 다르게 14개국에 특사단을 파견하겠다고 했다. 국제사회에 ‘민주 대한민국’의 복귀를 알리고 새 정부 국정 철학과 대외 정책을 설명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이후 11개국 특사단이 발표됐고 10개국 특사단이 임무를 마치고 돌아왔다.

전례를 깬 이번 특사 외교를 두고 ‘과연 국익을 극대화한 실용외교인가’라는 물음표가 붙는다. 이 대통령 친서를 직접 받은 정상은 유럽연합(EU)과 인도,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 4개국에 불과했다. 영국, 프랑스, 독일, 폴란드, 캐나다, 호주 등 6개 국가에선 장관급이 특사단을 맞았다.

역대 정부 출범 직후 파견된 특사단이 모두 정상을 만나고 온 건 아니지만 특사 외교 취지를 고려하면 친서를 받는 대상의 ‘급’은 중요하다. 대통령 의중을 전달하면서 타국 정상의 반응과 한국에 대한 평소 생각을 가감 없이 들어볼 좋은 기회이기 때문. 이는 철저히 카운터파트 틀에서 이뤄지는 외교 소통으론 얻기 힘든 부분이다. “특사 외교가 정상 외교의 한 부분인데 정상을 만나지 못하면 의미가 퇴색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특사단 파견 업무에 관여한 한 실무자는 “전 세계가 언유주얼(unusual·특별한)한 상황”이라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미국발 통상 전쟁과 복합 위기가 뒤얽힌 현 국제 정세로 인해 각국에 특사 파견을 조율하기 쉽지 않다는 것.

그럼에도 이번 특사 외교에 대한 무게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은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전례처럼 이 대통령이 출발을 앞둔 특사단을 면담하거나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특사단으로부터 관련 보고를 받았다는 소식도 들리지 않는다.

특사 외교의 진정성에 대한 의구심은 사실상 ‘대선 포상 휴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정도였던 특사단 구성과도 무관치 않다. 지금까지 발표된 특사 33명 중 박용만 전 두산그룹 회장을 제외하면 32명이 여권 인사로 채워졌다. 9개국 특사단장은 모두 대선 캠프 선대위원장들에게 돌아갔다. 이는 정치인뿐만 아니라 기업인, 외교안보 전문가 등 단원 구성에 변주를 줬던 문재인 정부 시절과 비교해도 아쉽다는 평가다.

전례대로라면 가장 일찍 출발했어야 할 미·일·중 주요국 특사 외교가 감감무소식이라는 점도 문제다. 중국과 일본은 특사단 구성도 확정되지 않았다. 특히 미국의 경우 특사단 명단이 발표된 지 보름이 넘었지만 출국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 등 장관급 면담을 타진했지만 일정 조율에 난항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외교 소식통은 “핵심 동맹 특사가 장관급도 못 만나면 외교 참사 얘기가 나오지 않겠느냐”고 했다.

관세 협상 후속 조치를 비롯해 ‘전략적 유연성 강화’로 대표되는 주한미군 재편 등 한미 관계 불확실성이 어느 때보다 큰 시기에 특사단이 얼마나 국익에 보탬이 되는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차라리 주요국 대사 인선이나 서둘러라”라는 지적이 나오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대한민국의 정상화를 전 세계에 알리겠다며 시작된 특사 외교가 용두사미로 귀결되지 않으려면 반전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특사 외교가 ‘국익 중심 실용외교’라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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