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조종엽]중앙박물관 ‘뮷즈 대박’… 뿌리 찾아가는 일상의 美感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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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엽 문화부 차장
조종엽 문화부 차장
‘9차 예약판매 시작.’ 홈쇼핑이나 대기업 마트 온라인 쇼핑몰인 줄 알았다. 이 문구는 ‘국립박물관 문화상품’ 온라인 숍의 ‘까치 호랑이 배지’ 판매 글 제목이다. 이 배지는 이미 약 2만3000개가 팔렸는데, 지금 주문하면 석 달여 뒤인 11월 19일부터 순차적으로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최근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가 주목받으면서 작품 속 호랑이(‘더피’)와 까치(‘수시’)를 닮은 이 배지가 덩달아 인기를 누리는 것. 해외에서도 구매 문의가 잇따르고 있지만 국내에 유통할 물량도 없다.

박물관 굿즈(상품)를 뜻하는 ‘뮷즈(museum+goods)’의 인기는 ‘케데헌’ 전에도 이미 폭발적이었다. ‘반가사유상 미니어처’ ‘단청 키보드’ ‘수막새 수저받침’ ‘달항아리 도어 차임’ 일시 품절, ‘갓 키링’ 주문 폭주 OO일부터 순차 발송….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뮷즈가 줄줄이 사탕이다. 혹시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면 살 수 있지 않을까? 소셜미디어엔 아이들 방학인 요즘 ‘한강대교부터 주차장 진입 대기 줄을 서서 1시간 걸려 박물관에 입장했는데, 굿즈 구매하려고 또 문화상품점에서 줄을 섰으나 오전에 이미 매진됐더라’는 경험담이 한둘이 아니다.

데이터도 같은 사실을 보여준다. 국립박물관의 뮷즈를 개발해 판매하는 국립박물관문화재단에 따르면 뮷즈 매출은 2022년 113억 원을 기록하며 처음 100억 원을 넘었는데, 지난해엔 213억 원으로 2년 만에 약 2배가 됐다. ‘취객선비 3인방 변색 잔 세트’(이것도 일시 품절)는 차가운 액체를 따르면 겉에 그려진 김홍도풍(風)의 선비 얼굴이 붉게 변하는데, 지난해 약 8만 세트가 팔렸다. 재단의 뮷즈 매출은 올해 3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별개로 국가유산진흥원의 온라인 쇼핑몰도 일월오봉도가 그려진 가방, 지갑, 손수건, 부채 등이 인기리에 팔리면서 최근 매출이 급신장했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뮷즈는 ‘힙트래디션(hip+tradition)’의 대표적 아이템이 됐다. 이미 일시적 유행(fad)을 지나 트렌드(trend·소수가 동조하며 2, 3년 유행)가 됐고, 메가트렌드(megatrend·대다수가 동조하며 10년 이상 지속)가 될지 갈림길에 있다고 봐야 한다. K컬처의 부상이 전통문화와 박물관에 대한 관심을 낳고, 전통이 다시 범(汎)K컬처의 자양분이 되는 선순환의 한 단면이다.

뮷즈를 보면 일단 예쁘고 실용적이어서 갖고 싶게 생겼다. 김미경 박물관문화재단 상품사업본부장은 “2016년 입사했을 땐 저렴한 문구류가 많았는데, 이후 일상에서 쓸모 있는 다양한 상품에 개발의 초점을 맞추는 한편 젊은 감각의 디자인을 외부 공모한 것이 주효한 것 같다”며 “문화유산이 박물관을 넘어 한국인의 삶에 스며들도록 기업 등과의 협업을 확대할 것”이라고 했다.

세계에 한국 호랑이를 각인시킨 건 1988년 서울 올림픽의 마스코트인 호돌이였다. 이 올림픽 개회식에선 민속놀이 굴렁쇠가 등장해 세계인의 눈길을 사로잡았지만 당시에도 이미 굴렁쇠를 굴리며 노는 아이들은 거의 없었다. 이제라도 전통의 미감(美感)이 다시 일상으로 들어오는 건 반가운 일이다. 가격이 좀 나가긴 하지만 무형유산 보유자 등 장인들의 전통 공예품에도 이런 관심이 옮겨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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