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재 음식평론가“몸에 좋은 것 맞나?” “해외보다 비싸다”…. 신나게 두들겨 맞았지만 우유의 시간이 그래도 조금 남았다. 식물성 대체유의 추진력이 떨어진 덕분이다. 일단 영양소 면에서 우유보다 더 낫지 않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다. 단백질의 경우 240mL 기준 우유가 8.2g이지만 귀리는 2.7g, 아몬드는 고작 1.0g에 불과하다. 심지어 아몬드는 재배에 물이 많이 소모돼 전 세계가 가뭄으로 속이 타는 현실에서 바람직하지 않은 작물이다.
이럴 때 우유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물론 귀리유 등은 식물성 대체재이므로 우유와 소비층이 겹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중도를 잡아야 한다’는 말이 비단 정치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우유와 유제품을 더 소비하고 싶으나 좋지 않은 품질과 좁은 선택의 폭, 높은 사료값과 원유 가격 연동제로 인한 비싼 가격 탓에 외면하는 ‘우유 중도층’이 분명히 있다.
한국인의 75%가 유당불내증 보유자인데도 상당수가 학교 급식을 통해 불편한 속을 감내하며 우유를 마시고 자랐다. 덕분에 몸은 유당 분해에 익숙해졌을 수도 있지만 억지로 먹는 바람에 얻은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을 달래고 다시 우유에 정을 붙이게 하려면 품질 좋고 다양한 유제품이 필요한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일단 젖소의 절대 다수, 거의 100%가 맛보다 생산량에 초점을 맞춘 젖소 홀스타인종이다.
따라서 본디 썩 맛있지 않은 원유의 대부분을 역시 맛보다 효율을 위한 초고온 순간살균법(125∼138도에서 2∼4초간 살균)으로 처리한다. 아무래도 맛의 섬세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나마 A2 단백질을 함유한 제품군(1L당 3600원 선)이 맛이 좋아 희망을 걸어볼 만하다. A2는 우유 단백질인 베타-카제인의 하나로, 모유의 단백질 구조와 유사해 소화에 불편함을 덜 느끼도록 돕는다고 알려져 있다.
업계의 마지막 카드인 누렁소 저지종의 우유도 소량이지만 출시되고 있다. 맛이 홀스타인종에 비해 월등한 저지종은 우유의 고급화 추세를 타고 전 세계적으로 다시 세를 불리고 있는데, 진하고도 무겁지 않아 맛이 빼어나다. 하지만 제주 등 국내 생산 제품은 저지치고도 썩 맛있지 않은데, 1L당 4978원으로 홀스타인종 흰 우유의 2747원(세계 5위 고가)에 비해 1.8배 비싸 매력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그래도 우유 자체는 많이 좋아졌다. 진짜 문제는 버터와 치즈, 아이스크림 등의 가공 유제품군이다. 매일유업이 분발해 발효버터부터 자연 치즈, 국산 우유와 크림으로만 만든 아이스크림까지 내놓으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완성도와 맛에 비해 가격대가 너무 높게 형성돼 있어 현재로선 수입품과의 경쟁이 매우 어려워 보인다.
현실이 이렇게 어렵지만 그래도 우유가 붙잡을 수 있는 동아줄이 아직 두 갈래나 더 남아 있다. 바로 커피와 빵이다. 이 시대의 숭늉으로 자리를 확고히 잡은 커피의 대부분은 아메리카노이다. 하지만 커피의 수요 자체가 늘면 라테나 카푸치노 같은 소위 ‘배리에이션’ 음료가 우유의 소비를 충분히 촉진시킬 수 있다. 같은 이치에서 재료로 쓰일 뿐만 아니라 잘 어울리는 음료로서 빵을 통한 우유 소비 진작도 노려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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