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수와 동치미 국물의 조화… 대통령과 배우가 찾던 냉면[김도언의 너희가 노포를 아느냐]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8월 14일 2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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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은평구 갈현동 만포면옥 본점의 평양냉면. 김도언 소설가 제공
서울 은평구 갈현동 만포면옥 본점의 평양냉면. 김도언 소설가 제공
김도언 소설가
김도언 소설가
서울 은평구 갈현동 지하철 6호선 구산역에서 연신내역 중간쯤, 대로변을 지나다 보면 ‘만포면옥 본점’이라는 간판을 내건 집이 보인다. 1972년 문을 연 이 집은 54년째 장사를 이어오고 있다. 상호가 말해주듯 냉면을 대표 음식으로 내세운다. 1대 지해성, 진정옥 부부가 당시 경기 고양군 동산리에서 창업한 이후 자녀들과 함께 은평구 진관동, 경기 파주시, 양주시 등지에서 장사를 이어갔다. 지 씨는 영화 제작 일을 하던 중 생계에 보탬이 될까 싶어 평안남도 용강 출신 부인과 냉면집을 열었다. 영화배우들이 단골로 찾아오고 서빙도 하면서 입소문이 났다. 심지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생전에 찾을 정도로 성업을 이뤘다.

필자가 찾은 갈현동 가게는 셋째 아들 지용석 씨가 운영하고 있다. 이 집 냉면의 육수는 차돌과 양지를 섞어 3시간 넘게 끓여내 기본 베이스를 만든다. 거기에 직접 담근 동치미 국물을 배합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 맛이 정말 황홀할 정도로 절묘하다. 특히 은근히 올라오는 신맛이 감칠맛을 돕는 게 일품이다. 술 먹고 뒤죽박죽 꼬인 속까지 시원하게 풀어줄 정도다. 순전히 필자의 개인적인 입맛으로 평가해 보면 육수의 수굿한 맛만으로는 평양냉면의 또 다른 노포인 을밀대의 냉면과 1위를 다툴 정도다. 면의 식감도 적당한 끈기와 저작감을 안겨준다. 만포면옥은 뜨거운 육수도 손님들에게 내주는데 차돌과 양지를 끓인 물에 면수를 함께 섞은 것인지 깊고 짭조름하면서도 구수한 뒷맛이 있다.

함께 나오는 백김치와 깍두기의 간도 어지간하다. 한때 은평구 관내에 살기도 했던 소설가 김훈 선생이 “만포면옥의 냉면을 맛보고 인생관이 바뀌었다”고 극찬했다는 말도 전해진다. 김훈 선생의 평소 어법이 과장이나 너스레와는 거리가 멀단 점에서 믿어도 좋을 것이다. 만포면옥의 차림표에는 물냉면만 있는 게 아니다. 어복쟁반, 만둣국, 옛날불고기 등도 이북식 조리법으로 맛깔스럽게 차려내 호평을 받고 있다.

2022년 5월 초 만포면옥 본점에 화재가 났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다. 화재로 업장만 훼손됐는데 빠른 복구 작업 덕분에 그달 말부터 영업을 재개했다. 화재는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다. 손님들이 새롭게 단장된 가게에서 보다 쾌적하게 평양냉면의 정갈한 맛을 음미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사람과 세월을 타는 노포이기에 긴 시간 동안 시련과 사고 등을 이겨내는 시간 역시 있었을 테다. 진정한 노포라면 그것을 하나의 서사로 받아들이고 전통이라는 행간에 주름처럼 새길 것이다.

인터넷 포털에 ‘만포면옥’을 검색하면 양주시 장흥면에도 ‘만포면옥 본점’이 운영되는 것으로 나온다. 본점이 두 곳인 셈이다. 양주 남포면옥을 운영하는 분 역시 창업자 부부의 따님이라고 들었다. 그러니까 갈현동 남포면옥 지 대표와는 남매지간이다. 이들은 서로 ‘본점’이라는 레토릭을 공유하면서 자존심을 걸고 부모님이 물려준 평양냉면의 진면목을 지켜 나가기 위해 선의의 경쟁을 벌이고 있다. 노포의 사회학을 톺아보는 필자가 볼 때 창업자의 자녀들이 가지를 뻗듯 선대의 유산을 확장시키는 모습이 지극히 자연스럽다. 그 원칙과 철학만 온전히 지킨다면 ‘본점’이나 ‘원조’가 한 곳이 아니더라도 식객들은 충분히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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