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정은]병력 확충, 젠더 갈등 지뢰 피하려면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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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 부국장
이정은 부국장
2030세대의 젠더 갈등이 불거질 때 빠지지 않는 것이 군대다. 각종 성평등 문제가 제기될 때면 남성 커뮤니티에는 여성의 군 복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동시에 커진다. 저출산이 심화하는 요즘엔 “여자들은 애도 안 낳으면서…” 같은 힐난이 여혐(女嫌)의 논거로 추가되고 있다. 힘들지만 피할 수 없는 책임으로 여겨졌던 ‘여자=출산, 남자=군 복무’의 이분법적 공식이 무너졌다고 느끼는 젊은 남성들의 불만이 팽배해진 탓이다.

출산율 감소로 한국 국군의 병력은 45만 명 수준까지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6년 동안 20%가 줄면서 사단급 이상 부대 17곳이 해체 혹은 통합됐다고 한다. 군 병력 50만 명 선이 무너진 속도가 예상보다 빠르다. 당초 예측된 시기는 인구절벽 문제가 심화하는 2035년쯤이었다. 군대 갈 젊은 남성들이 계속 줄면 최전방의 철책선을 지킬 군인이 부족해 안보 공백이 생기는 상황을 피할 수 없다. 이를 막기 위해 5060 시니어 남성들의 재입대를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을 국회 국방위원장이 내놨을 정도다.

예상보다 빠른 ‘軍 병력 50만 명’ 붕괴

막상 동맹인 미국은 한반도에서 주한미군의 역할과 규모를 축소하려는 시도를 본격화할 태세다. 주한미군은 중국 견제에 집중할 테니 북한의 위협엔 한국이 독자적으로 대응하라는 것이다.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한미 정상회담에서 관련 의제가 다뤄질 가능성이 높다. 그 결과에 따라 한국이 독자적인 국방력 강화 방안을 마련해야 할 필요성이 더 커지게 될 것이다. ‘우리 땅은 우리가 지켜야 한다’는 명제 앞에 적정한 군 병력을 유지하고 그 역량을 키워가는 일은 중요한 숙제일 수밖에 없다.

부족한 병력을 보충할 대안으로 거론되는 여성의 군 복무가 새삼스러운 논쟁거리는 아니다. 선거 때면 대놓고 여성 징병제를 거론하지는 않아도 ‘여성도 특정 기간 군대 훈련을 받도록 하자’는 식의 제한적 공약을 내놓은 정치인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병력 구조 개편과 관련됐다고는 하지만 남성 표를 의식한 ‘젠더 갈라치기’ 선거 전략이 아니냐는 비판도 거셌다. 앞으로 총선이 3년, 대선은 5년 가까이 남은 지금은 잠잠하지만 이 문제는 또 언제 불거질지 모르는 젠더 갈등의 뇌관이기도 하다.

여성의 군 복무 관련 논의를 마냥 금기시할 건 아니라고 본다. 유럽에선 덴마크가 지난달부터 여성 징병제 실시에 들어갔다. 만 18세 이상의 여성들은 모두 남성과 마찬가지로 징집 대상자로 등록한 뒤 필요한 병력만큼 추첨으로 징병돼 11개월간 복무하는 방식이다. 스웨덴과 노르웨이는 그보다도 앞서 여성 징병제를 도입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이후 전쟁의 장기화로 국방력 강화의 필요성을 절감한 결과다.

국방 개혁 속 女 기여 높일 단계적 접근

다만 우리와는 병력 규모나 운용 환경이 다른 일부 국가의 움직임이 한국에서 ‘여자도 군대 가야 한다’는 결론으로 직결되는 건 아니다. 여성들의 반발은 둘째 치고 실제 이행 과정에서 전례 없는 혼란과 문제들이 쏟아질 것이다. 남성 중심인 군대에서 여군이 대폭 늘어날 경우 이를 감당할 인프라도 문화도 갖춰지지 않았다. 남녀에게 같은 조건을 적용하기에는 신체적 차이 등 여러 제약조건이 존재한다. 2021년 공군 여중사 성추행 사망 사건은 상부의 은폐 논란 속에 특검까지 가야 했다.

우선은 드론이나 로봇 군단 같은 미래의 첨단 무기로 병력 감소를 대체할 방안에 속도를 내는 게 순서다. 전자전과 사이버전으로 전쟁의 양상은 계속 변하고 있다. 안보 분야에서 여성의 역할을 확대할 수 있는 조건들을 갖춰 나가면서 부사관의 확대나 희망복무제 등 단계적으로 여군을 늘려가는 방법을 고민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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