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치금이 풍족하면 감방 생활의 질이 달라진다고 교정시설 경험자들은 말한다. 세수할 때 누구는 비누를 쓰는데 누구는 폼클렌징으로 씻고, 겨울에도 누구는 모포 한 장으로 버티는가 하면 두툼한 극세사 이불을 덮는 수형자도 있다. 이런 차이를 만드는 게 영치금이다. 그래서 수감자들 세계에선 영치금이 두둑한 이들이 ‘범털’(재력과 권력을 가진 수형자)로 통한다. 반면 영치금 계좌가 비어 있는 재소자들은 ‘법자’(법무부의 자식)라면서 자조한다고 한다.
▷그렇다고 재소자가 영치금을 무한정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국가가 제공하는 기본 의식주 외에 필요 물품을 최소한으로만 구입할 수 있다. 돈 쓸 자유를 제한하는 것도 처벌의 일환이고, 수용자들 간 위화감을 조성할 수 있어 상한선을 두고 있다. 수감 기간 중 보유할 수 있는 영치금은 400만 원을 넘을 수 없다. 음식물 사는 데 쓸 수 있는 돈도 하루 최대 2만 원이다. 옷, 신발, 의료용품 등은 액수 제한이 없다.
▷구치소에선 400만 원 넘는 돈은 쓸 수도 없는데 윤석열 전 대통령이 받은 영치금은 3억1000만 원에 달한다. 재구속된 7월 10일부터 지난달 말까지 약 50일간 받은 돈이 그 정도다. 전국 교정시설 수감자 6만여 명 중 압도적 1위다.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의 부인 정경심 씨도 2억4000만 원의 영치금을 받은 적이 있지만 2년간 누적액이어서 윤 전 대통령에게는 한참 못 미친다.
▷윤 전 대통령이 처음 구속됐던 올 1∼3월만 해도 영치금은 450만 원이 전부였다. 김건희 여사가 50만 원, 장모 최은순 씨가 100만 원을 보냈다. 재수감 이후 영치금이 크게 불어난 건 김계리 변호사와 전한길 씨가 영치금 계좌를 알리면서부터다. 이들은 등록 재산이 거의 80억 원인 윤 전 대통령을 두고 “창졸지간에 돈 한 푼 없이 들어가셔서 아무것도 못 사고 계신다” “고독한 옥중 투쟁을 하고 있다”며 모금을 호소했다. 그러자 ‘윤 어게인’ ‘계몽시켜줘 감사하다’는 등의 메시지와 함께 3억 원이 넘게 모였다. 사실상 윤 전 대통령을 향한 정치적 후원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은 지지자들이 보내주는 돈으로 보관 한도인 400만 원이 채워질 때마다 개인 계좌로 옮겼다. 구치소에서 생필품이나 간식 등을 사는 데 쓴 돈은 200만 원 정도다. 나머지 대부분은 ‘변호사비 및 치료비’ 명목으로 출금됐다고 하는데 실제 그 용도로 얼마나 쓰였는지는 알 수 없다. 윤 전 대통령이 영치금을 외부로 이체한 횟수는 50일간 80여 차례에 달한다고 한다. 수사와 재판을 모두 거부하고, 체포영장 집행에도 불응하던 그가 영치금 관리만큼은 하루에도 몇 번씩 꼬박꼬박 하는 것 같다.
댓글 0